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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를 보고 있으면 그다지 특별한 소재는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하지만 그 과거와 현재를 잇는 그의 소설‘검은 꽃’ 에서 는 새로운 꿈을 쫓는 젊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비록 시대는 달랐지만 요즘의 이슈가 되고 있는 젊은 층의 이민에 대한 이야기와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다. 개인의 능력은 뛰어 나나 사회에서 그에 적절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나라가 위 기에 처하자 젊은 사람들은 이 나라를 버리려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특히나 나라에 생명을 담보로 한 군복무중이기에 이민에 관련된 기사를 접하면 씁쓸하기까 지 하였다. 그런 점에서 김영하의 이번 소설은 어떤 시선으 로 이민을 바라보았는지 궁금했다. 읽는 내내 다양한 인간 사에 얽힌 이야기를 읽게 되었을 뿐, 이민을 시도하는 사람 들을 편협한 시각으로 보아 왔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첫 번째의 과정 - 먼 항해 군대에서의 기간을 나는 일종의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자유롭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이곳에서 이동 중인 것이 다. ‘검은 꽃’ 에서의 이민자들은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꿈 꾼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곳 역시도 참혹했던 조 국의 상황과 같은 현실일 뿐이었다. 보다 솔직히 자신의 상 황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군대에서 특히나 병으 로 온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군대에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 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나아갈 세상을 향한 하나의 과 정일 뿐이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들은 지나 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날을 고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 낸다. 소설에서 묘사한 배안에서의 장면은 이민자들이 꿈꾸었 던 생활이 처음부터 어떻게 깨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한 배 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비참한 삶들이 부대끼는 공 간과 반복된 삶, 발전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한정된 장소, 조선을 벗어나기 위해 배를 타야 했었다. 배 안에서의 신분 간의 뒤엉킴은 삶의 본질, 태초의 혼돈을 불러일으키고 있 었다. 500년의 역사 속에서 굳어진 관습과 예의는 생존을 위해 하루를 버티어 가는 인간의 본성 앞에 허례허식으로 취급되었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조국을 떠나면서 다시금 이 땅에 돌아올 때는 조선의 기 준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금의환향하겠다는 생각만이 가득 하였을 것이다. 아니면 멕시코에서 살면서 이 곳에서보다 나은 삶을 기대하였거나 이 땅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자 떠나간 자, 각자의 이유는 배를 탔던 1033명의 숫자만큼이 나 가지각색이었다. 천여 명의 사람들은 공사(당시 대사관 같은 역할을 했던 곳)가 있는 하와이도 아닌 멕시코의‘에 네켄 농장’ 으로 그렇게 팔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조밀 조밀하게 모여 앉아 있던 이들은 넓고 평평 한 바다라고 생각했던 관념 속의 혹은 문자 속의 태평양이 아닌 거세고 높은 파도를 가진 태평양을 건너면서 파도가 만들어 내는 물살에 의해 더욱 엉켜야 했다. 한 사대부의 집 안은 멕시코로 향하는 배안에서도 기존에 누려 왔던 양반의 대우를 요구하기도 했다. 평민과 천민이 남자와 여자가 같 은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버티기 힘든 고정관념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혹은 당시의 조선의 평 민들에게도 남·여·노·소가 뒤엉켜 연출하는 장면은 새 로운 세상으로 가는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은 태평양을 건너면서도 굽혀지질 않았다. 오히려 혹독한 상황이 그들을 더욱 강하 게 만들었다. 땅을 밟고 농장으로 팔려가기 시작하면서부터 꿈이 서서히 짓밟힘을 알게 된다.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 기 위해 깨 버려야 할 기존의 질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삶을 택한다는 결정은 한 순간이었었지만 삶은 순간의 결정에 순순히 그들이 바라는 것을 내놓지도 그들이 꿈꾸어 온 삶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새로이 사는 법 을 익혀야 했다. 1905년 당시의 조선에서 요구되었던 관습, 예의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더 이상 대한의, 혹은 조선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세계화의 시민이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으며 충실히 현실을 살아간 다. 그들의 변해가는 모습에 감히 욕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힘은 그들이 만졌던 에네켄이란 식물보다도 그들의 가 슴 속에 상처를 내며 변화시키고 있었다. 다양한 인간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에네켄 농장의 사람들... 에네켄 농장에서 에네켄 농장에서 그들은 변해가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 다. 적은 임금과 비싼 물품에 항의를 하기도 하고 파업을 시 도하기도 한다. 농업에 익숙한 조선의 평민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어진 대로 그 상황을 이해하며 살아야 했 해군/2005. 1~2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