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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그레고리 펙은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을 하면서도 아들을 그 싸움 터로 보냈다. 하도 여러 번 비슷한 말을 들어서 그런지 한번은 고 등학생인 큰 아이가 불쑥 말했다. “아버지 그만 말 씀하셔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는 아들을 외국 에 유학 보내서 군복을 안 입히 려 하는 이도 있다며, 저는 어련히 알아서 간다고 장담한다. 마침내 큰애가 징병 신체검사를 받던 날. 가벼운 몸무게 를 걱정하고 있는데 검사를 마치고 온 아이가 합격했다고 자랑이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체중에 문제가 있다고 군의 관이 부르더니“군대 갈 테냐” 고 묻기에 간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47.5킬로그램에 조금 모자란 장정에게는 본인 의사 를 물었다고 한다. 순진한 녀석이 제 장래를 생각하여 간다 고 했는지 내 으름장이 먹혀들었는지 지금도 모른다. 남들은 아니 보내려고 기를 쓰는데 안 가도 되는 아이를 들볶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아내의 넋두리를 들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아들을 대견하게 여기며 속으로“옳지, 옳 아” 소리를 연발했다. 더구나 삼 남매의 대학등록금을 몰리 지 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나는 요샛말로 표정을 관리하며, 옛날에 나 자신도 몸무게가 가벼워 비슷 한 경험을 한 일이 생각나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나 중에 들으니 훈련소에 가서 재검사가 있었는데 떨어지지 않 으려고 미리 꽤 많은 물을 마셨다나.... 훈련이 끝날 초겨울 무렵에 유행성 독감이 돌아 한꺼번에 수많은 훈련병이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얼마 있다가 훈 련소 가까이에 사는 처가에서 꺼림한 기별이 왔다. 병원의 훈련병들이 모두 퇴원하여 각 부대로 떠났 는데 우리 아이만 남아 있다는 것 이다. 덜컥 겁이 났다. 아버 지가 폐결핵으로 일찍 돌아가 시고 나 또한 호흡기 계통 이 썩 좋은 편이 아니 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한번도 가보지 아니한 나는 애가 타서 부리나케 달려가서 환자 면회 를 신청하였더니 아이가 바로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 다. ‘왜 왔어요?’ 하는 표정이다. 사정을 물으니 독감은 다 낫는데 병원 일소니 모자라서 병실에 약도 돌리고 자지레한 심부름도 하고 있다고 한다. 맥이 탁 풀리고 화가 치밀었다. 이 문제와 관계있는 사람과의 면담을 요청했더니 토요일 이라 이미 퇴근했다는 대답이다. 나는‘나일론 환자’ 는 꾀 병이나 아프지 않으면서 입원환자 명단에 올라 있는 군인을 흔히 이르는 그 시절의 말이다. 얼마 뒤 영관급 장교가 와서 허겁지겁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하기에 짧은 시일 안에 바로 잡지 않으면 상급부대에 알리겠다고 쏘아붙이고 돌아왔다. 며칠 뒤 아들이 퇴원한 것을 알았는데 새 소속부대를 몰 라서 애먹었다. 여러 날 수소문하여 겨우 찾아 면회하러 갔 더니 싸들고 간 불고기와 닭튀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 고 입덧하는 여자처럼 햇오이는 없느냐고 묻는다. 그때는 요새처럼 오이 참외를 아무 철에나 먹을 수 있는 시절이 아 니었다. 별 재주는 없는데 몸무게가 턱없이 가벼운 것과 군대를 밀고 들어가는 솜씨는 부자가 같은 모양이다. 내림치고 유 별나다. 해군/2005.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