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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f t h e k o r e a n n a v y 탄막을 뚫고 신속히 철수함으로써 그들이 기도하던 포위 전은 완전히 실패하게 되었으며, 도리어 우리 육전대의 민 첩한 우회작전으로 적은 영덕 북방 4km 지점까지 패퇴하 는 역현상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적은 후방으로부터 더 많은 증원부대와 화력을 동원하여 맹렬한 공격을 가하여 왔기 때문에 우리 육·해군 부대는 밤을 새워서 싸웠다. 날이 밝아도 격전은 그대로 계속되었으며 피아간의 손해는 막대하였다. 그런 데 이 격전 중에서 해군의 위생사들이 용감히 탄막을 뚫고 들어가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우리 육·해군 장병들을 구 출한 일은 특별히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위생사는 2조 홍순권(洪淳權) 이었다. 지금도 영덕전투에서 홍 하사관의 등에 업히어 구 사일생으로 살아 돌아 온 육·해군의 상이용사들 가운데 아직도 그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홍 하사관의 용감한 구출에 의하여 살아 돌아왔으 며, 그들의 전공 또한 영원히 빛날 것이다. 7월 19일, 우리 육·해군 부대는 온종일 치열한 적과의 전투에서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그만 영덕을 적에게 빼 앗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선은 영덕과 강구(江口)의 중 간지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적은 영덕에서 거듭 혈전을 강요해 옴으로써 기어이 그 곳을 점령하였고, 일거에 강구 를 거쳐 포항으로 진출하려고 전력을 다하였으나, 강구 해 상에는 우리 해군의 제2정대와 미 해군의 함정들이 집결 되어 적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었으며, 함정은 쉴 새 없이 적의 머리 위에 포탄을 퍼부어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 였고, 우리 육전대의 민첩한 기동전과 육군의 영웅적인 항 전은 적으로 하여급 강구에 일보도 접근치 못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적의 일부는 서부 산악지대를 타고 강구와 포항 의 중간지점인 남정(南亭)으로 침투하게 되었다. 한편, 강구를 기어이 탈취코자 하는 적과 이 곳을 사수 하려는 우리 군 사이에는 그 후도 계속해서 교전이 전개되 었으며, 따라서 전투가 장기화 됨에 따라 속전속결 전략을 꾀한 적의 계획에는 중대한 차질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이 전투 중 야간 탐색전에서 어떤 용감한 병사는 적을 발견하고 수하(誰何)하자 적은 육군이므로 이 대원은 우 군으로 착각하여 건빵까지 주면서 나누어 먹다가 한참후 에야 이 자가 휴대하고 있는 무기가 괴뢰군의 따발총인 것 을 알고 즉각 사살한 웃지 못 할 일화도 있다. 또 이 전투에서 특기할만 한 것은 강점복(姜占福) 중위가 이끄는 해군정보대의 활동이었다. 정보대는 한편으로 정보 를 수집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남하하는 피난민 등을 이용 한 적의 간첩공작을 파괴하는 데도 공로가 다대하였다. 전술(前述)한 바 있는 격전에서 홍 하사관은 특히 폭우 중부상병 구조작업 여러번 생명을 잃을 뻔 하였으며, 응급 부상병을 추럭에 싣고 운반도중 폭우에 휩쓸려 실명당하 는 위기까지 맞았다. 그러나 군의관의 응급처치와 정성어 린 간호로 곧 시력이 회복되었으나 후송되어 요양할 지경 이었으나, 이를 마다하고 장사전투, 안강전투에 참가, 부 상병의 응급치료와 전사자 조치 등 계속하여 임무를 수행 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군이 북진 시에는주로 해병대 에 소속되어 활약하였으며, 전 전쟁기간을 통하여 그의 숨 은 공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대하였다. 해군/2003. 5~6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