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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i s t o r i c a l s t o r y 때는 1950년 7월 18일 동해안을 타고 남하하는 적 제5사단의 일선부대는 영덕(盈德) 북 방 1km지점까지 침입해 오고 있었다. 아 육군 제23연대는 적은 병력으로 이 강대한 적과 맞붙어 연일 야간격전을 전개하였는데, 화력과 병력에 있어서 월등히 우세한 적은 일거에 부산까지 진격할 기세로 맹공을 가해 오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아 육군은 야포와 박격포 등 중화력에 있어서 현저한 열세로 순전히 소총 과 정신력만으로 일치단결하여 적과 싸우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주간에는 북향 중인 UN 공군이 밀집하여 공격해 들어 오는 적에 대하여 폭격과 기총소사를 가해 주는 덕택으로 23 연대는 겨우 현 진지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 잠시 뿐, 공군기가 지나가고 나면 또다 시 적의 압박은 더욱 거세지곤 하였다. 이와 같은 격전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사병은 부상을 당하였으며 부상하지 않은 병사도 연속적으로 침입해 오는 적과 싸우는 관계로 지칠대로 지쳐서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덕 지구에서 육군이 고전에 빠져 있다는 정보를 접한 포항경비부사령관 남상휘(南相 徽) 중령은 전일 안강(安康) 전투에서 인민군을 전멸시키고 돌아 온 용호대(龍虎隊)를 휴 식시킬 사이도 없이 즉각적으로 영덕에 출동시켜 육군과의 합동으로 인민군을 격퇴케 하였 다. 우리 육전대가 현지에 도착했을 때 절망상태에 빠졌던 육군 장병의 사기는 다시 용기를 얻게 되었으며, 용감하고 유능한 위생 사병들의 전선의 고지·저지를 막론하고 쫓아 다니 며 부상한 육군사병들을 치료하면서 이들에게 응급치로를 가해 주었고, 위급한 부상자는 후송을 하는 등 눈부신 활동을 전개하였다. 패기에 넘친 우리 육전대는 중요 전선을 담당하여 적과 교전하던 중, 전략적으로 꼭 필요 한 전방고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과도하게 진출한 관계로 적에게 완전 포위를 당한 뻔 하였 다. 그러나 육감이 밝은 김광회(金光會) 병조장(上士)의 신호에 따라 포탄이 비오 듯 하는 해군/2003. 5~6 68 적탄(敵彈) 속에서 용감히 임무를 수행한 위생병(衛生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