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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2003. 5~6 47 ■ 트루판 천산북로와 천산남로가 갈라지는 분기점에 위치한 투루 판은 실크로드 선상에서 가장 무더운 분지이다. 천산(天 山)의 눈 녹은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오아시스를 형성하 고 있는 투루판은 한때 중국과 서역을 잇는 중요한 교역지 였다. 분지인 까닭에 여름은 평균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겨울에는 섭씨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 인구는 94년 현재 18만5천여 명. 주민들의 75퍼센트 이 상이 위그르인이다. 이들의 조상은 터키계 유목민족으로 몽고고원에서 살다가 9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투루판을 비롯한 서역각지 오아시스로 이주, 농경생활을 시작했다. 투루판에는 유구한 역사를 증언하고있는 고창고성(高昌故 城)과 교하고성(交河故城)이 있다. 7세기 당시에는 한(漢) 민족이 투루판을 지배했다고 하며, 한 왕조는 서역에의 전 진기지로 삼기 위해 투루판에 두 고성을 세우게 된다. 그 러나 두 고성은 당나라 태종에게 멸망당하게 되며, 지금은 흙으로 쌓아 올린 시가지의 모습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섭씨 47도를 오르내리는 투루판에 도착했다. 갈증이 목 을 조이기 시작한다. 한 민가 집에 들려 물을 청했다. 서늘 한 평상 같은 곳에 한 노인장이 앉아 있고, 그 옆에는 며느 리가 차를 다리고 있었다. 살람알라이쿰(신의 은총이 그대에게라는 뜻)이란 회교 식 인사를 올리니 반색을 하며 나를 끌어 앉힌다. 재차 물 을 달라고 하자 뜨거운 차를 권한다. 이열치열이라고 이들 은 더운 날 오히려 뜨거운 차를 마셔 체온을 조절하고 갈 증을 푼다는 것 이었다. 차를 마시고 나나는 투루판의 명 물인 위그르 시장에 들렸다. 재미있고 정겨운 60년대의 우 리나라 시골장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물건과 돈을 주 고 받는 그들의 표정과 손길에선 전혀 욕심을 느낄 수 없 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서유기의 무대가 됐던 화염산과 이방인들이 투루판에 여러 가지 문화를 전달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천불동을 구경했다. 흙으로만 빚어 올린 천불동 과 화염산은 7월의 따가운 햇살 아래 지독한 열기만 뿜어 대고 있을 뿐, 한 때 고색 창연했던 고창국의 면모는 온데 간데 없어 세월의 무상함만 가슴 저리게 느껴졌다. 저녁이 되니 뜨거운 열사의 바람도 잠시 숨이 멎는 듯 열기가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 고 조금 쉬고 있자니까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 로비 쪽을 쳐다보니 위그르 민속 공연단들이 공연에 앞서 선전 을 하기위해 호텔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호기심에 3천원 정도를 주고 관람을 했다. 현란한 복장 의 컬러풀한 옷을 입은 위그르인들의 춤은 절도있고, 발놀 림 같은 것은 아랍 춤과 흡사했다. 그러다 갑자기 정전이 되었고 한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누군가 오토바이 불빛으로 조명을 대신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누구하나 불 평이 없었고 나중에는 단원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뜨겁게 춤을 추었다. 가진 것 없어도 넉넉한 이들의 마음은 지금 까지도 생각날 때마다 미소를 머금게 한다. ① 섭씨 40여도를 오르내리는 투루판의 불 화산 ② 투루판의 민속춤. 화려한 의상과 우아한 춤이 일품이다 ③ 투루판의 민속시장 풍경. 우리나라 70년대의 시골 장을 연상시킨다 ④ 투루판의 한 포목점. 지금도 비단이 거래된다 ① ② ③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