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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2003. 5~6 45 ■ 돈 황 돈황은 하서화랑의 끝에 위치한 도시로, 타크라마칸 사막이 시작 되는 변경 도시이다. 전한(前漢) 무제(武帝)가 돈황을 설치한 후 서 역(西域)경유의 중요 거점이며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번성했다. 돈황 의 주민들은 이슬람교도가 많고 한인계,이란계,터키계,인도계 등 각 종족이 골고루 거주하고있다. 돈황하면 뭐니 뭐니 해도 막고굴(幕高 窟)을 빼놓을 수 없다. 돈황 현성의 남동 30킬로 미터 지점 명사산 절 벽에 있는 막고굴은 1900년 경, 석굴에서 수도하던‘왕원록’ 이란 도 사가 발견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BC 4세기부터 14세기에 이 르는 천 년에 걸쳐 높이 50미터의 절벽에 만들어진 벌집처럼 패인 석 굴들로 구성되어 있는 막고굴은 현재는 동서 2킬로 미터의 길이에 492개의 석굴이 남아 있다. 막고굴에는 엄청난 수량의 고문헌,불교 서적,불화 등이 남아 있었을 뿐 더러, 석굴 벽에는 채색 석불들과 정 교한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었으나 두 차례에 걸친 도굴로 귀중한 자 료들이 서역으로 많이 유출되었다. 첫 번째 도굴은 1907년 영국의 탐험가인 스타인이 저질렀는데, 그 는 한문,티벳문으로 쓰여진 경전,고문서 5천 여점과 500점이 넘는 비 단, 종이, 마포에 그린 불화를 도굴하여 런던으로 돌아갔다. 이 문서 들은‘스타인 문서’ 로 분류되어 대영박물관과 인도 뉴델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두 번째로는 프랑스인 페리오가 1908년 유적을 다시 조사,고문서 500점과 회화, 공예품등을 파리로 가져가‘페리오 문서’ 라 해서 파리 ‘기에 미술관’ 에 소장했다. 두 차례에 걸친 고문서 탈취극은 당시의 청조 정부를 자극하여 돈황 고문서의 잔여품을 북경으로 이송시켰 ▲ 돈황시의 입구에 세워진 아치 역시 고풍스럽다 중국 불교 미술의 보고 막고굴 (사막의 모래억덕을 파서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