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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font style="background-color:#ffffff;font-size:14px"> 이충무공 영정(影幀) 크기: 세로 193cm, 가로 113cm. 공의 영정에 대하여 기록상으로 보아서는 일찍이 통영의 초묘안에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나 그 뒷소식은 전혀 알길이 없고 그 후 순천과 여수 충민사에 화상을 모신 일이 있었으나 역시 그 내력은 알 길이 없다. 1932년 일제 강점기에 현충사 재건을 위한 거족적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성금 16,021원30전으로 사당 및 영정을 모시고 남은 돈 386원 65전은 현충사 기금으로 하여 동년 6월 5일 송진우(宋鎭禹), 백관수(白寬洙), 유억겸(兪億兼) 등이 참석하여 영정 봉안식을 가졌다. 그때, 청전 이상범 화백(靑田 李象範 畵伯)이 영정을 그려서 현충사에 모셨으나, 고증이 부족하였으므로 1949년 다시 충무공기념사업회 편집위원 (위원장 이은상)들이 이당 김은호 화백(以堂 金殷鎬 畵伯)으로 하여금 두폭의충무공 영정을 그리게 하였는데 조복화상은 현충사에 모셨다가 순천 충무사로 옮겼으며(불의의 화재로 영정도 소실 되었다) 갑주입상은 한산도 영정각에 모셨다. 현재 현충사의 영정은 유성룡의 징비록에 나타난 고증에 입각하여 1953년에 월전 장우성 화백(月田 張遇聖 畵伯)이 그린 것으로 1973년 10월 30일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