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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주벌의 별이 되어 김좌진 장군은 1889년 충청남 도 홍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교 육자, 독립군지도자. 호는 백야 (白冶). ▶ 항일구국 대한광복단 활동 1909년 기호흥학회 장학재단 설립. 한성신보 이사 역임. 안창호·이갑 등과 서북학회를 세우 고 산하 교육기관으로 오성학교를 설립하여 교 감을 역임. 한편 청년학우회 설립에도 협력하였 다. 1911년 북간 도에 독립군사관학교를 설립하 기 위하여 자금조달 차 돈의동에 사는 족질 김 종근을 찾아간 것이 원인이 되어, 2년 6개월간 서대문감옥에 투옥되었다. 1917년 노백린, 신현 대, 박상진, 채기중 등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단 체 대한광복단에 참여하여 만주로 망명하다. 김좌진 장군은 1905년 을사늑약 이 체결되자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에 입학하였고. 집안의 모든 노비를 해방하고 집안 소유의 전답을 무상 으로 분배하였다. 1907년 호명학교 설립. 가산을 정리하여 학교 운영에 충당하게 하고 90여 칸의 생가를 학 교교사로 제공하였다. 충남 홍성에 대한협회 지부와 기호흥학회를 조직 하여 애국계몽 운동 전개하였다. 김좌진 장군 생가 (충남 홍성군)청산리 전투 김좌진 장군(앞)과 북로군정서 독립군 청산리 대첩 기념비 길림성 화룡시 청산리촌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金佐鎭)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