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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전쟁 3부 시대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57 참의부 독립군의 항일무장독립 투쟁은 1924년 최고의 전적을 이룩하였다. 이 시기 국내진공 작전을 전개한 독립군의 활동은 3분의 2 이상이 참의부 장병들이 이룩한 전과였다. 일본 군경 습 격, 일제 통치기관 파괴, 친일파 숙청, 독립군자금 모금 등 각 방면에 걸쳐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1924년 5월 19일 조선총독부 총독 사이토(齋藤實)가 국경 지방의 치안을 시찰하기 위해 압록 강 하류로 내려오는 경비정을 기습해 조선총독부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을 시작으로 1925년 3월 전부대가 3대로 나누어져 평안북도 초산 방면으로 출동, 추동 경찰관주재소, 하단동 경찰관 주재소, 벽동군 경찰관주재소를 습격, 파괴하고 퇴각하면서 국경수비대와 교전해 참의부 독립군 의 용맹을 떨치고 우리민족의 항일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렸다. ▶ 참의부 독립군, 사이토 조선총독 저격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총독 사이토는 이른바 문화통치를 앞세 워 조선인을 회유하는 한편, 국내 치안 및 한·만 국경에 대한 순찰을 강화해나갔다. 사이토가 1924년 5월 19일 마루야 마 쓰루기치 경무국장과 압록강 국 경을 시찰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참 의장 백광운 지시를 받은 참의부 제 1중대 소대장 이의준 참위는 분대장 김창균, 이춘화 등 10여 명의 대원들 을 이끌고, 평안북도 강계군 고산면 마시탄의 만주 쪽 절벽 바위틈에 매 복한 채 사이토 일행 60여 명의 경찰 이 동승한 국경순시선이 다가오자 대원들은 절벽 위에서 일제히 사격 을 가했다. 그러나 순시선이 전속력 으로 사정권을 벗어나 사이토 마코 토 총독을 사살하지는 못했다. 〈독립신문〉은 ‘재등실 영송연’이 란 제목으로 보도하여 민족독립에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었고, 만주 한인사회와 독립군 사기도 크게 높 아졌다. 사이토 조선총독 저격 유적지 (평안북도 강계군 마시탄) 참의부 국내진격 작전 (평안북도 초산군 압록강변)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 무장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