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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만주벌의 별이 되어 1911년 서간도 일대에 몰아친 대흉년, 풍토병, 중국인의 배척과 토지매매 금지, 일제의 감시 와 탄압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105인 사건으로 독립자금 지원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경학 사가 해산되자, 이회영은 독립자금마련을 위해 서울로 잠입하고, 이동녕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이시영 등은 봉천으로 이주하여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 부민단(扶民團) 설립 서간도를 지키는 이상룡, 김동삼, 김형식, 허혁 등 혁신유림과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기지 건 설을 지속하기 위해 1912년 통화현 광화진 합니하 로 이주하여 부민단을 조직하고,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이상룡은 광업사, 대사탄 농장 등을 설립하여 자립을 도모하고, 이관직과 정도순을 국내로 파견 하였다. 신흥학교 훈련감 김창환, 교감 윤기섭 등 은 유하현 한인마을 일대를 돌아다니며 모금하여 독립군 교육을 계속 유지하였다. 부민단 본부는 통 화현 합니하에 두고, 단장 허혁, 부단장 김동삼, 서무 김형식 등이 활동하였다. 삽과 괭이로 고원 지대를 평지로 만들어야 했고, 내왕 20리나 되는 좁은 산길 오가 며 험한 산턱의 돌산을 파 뒤져 돌과 흙을 어깨와 등으로 날라야만 되는 중노역이 었지만, 우리는 힘드는 줄도 몰랐고 오히려 원기왕성하게 청년의 노래로 기백을 높 이며 진행시켰다. - 신흥무관학교 교관 원종상 수기에서 - 신흥무관학교 유적지 (합니하 강변의 겨울) 서간도 겨울은 9월 말에 시작되어 이듬해 4월까지 영하 40도의 혹독한 강추위가 몰아치고, 마적떼의 습격, 풍토병의 창궐 등 고난과 시 련의 연속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으로 난관을 뚫고 독립의지를 키우는 항일지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서려 있는 합니하 고려촌은 귀중한 역사유적지이다. 피와 땀과 눈물로 세운 신흥무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