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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군의 한중연합 전투┃93 ▶ 사도하자 전투의 전개 사도하자 전투 는 경박호에서 동북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에서 일 · 만연합군 과 벌어진 전투이다. 1933년 4월 14일, 한 · 중연합군은 흑룡강성 영 안현 주둔 일·만주군의 연합부대가 토벌하러 온 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한중연합군 은 적군을 포위 하여 섬멸시킬 계획으로 병력 을 4대대로 나누어 이도하자 입 구에 매복하였다가 적의 퇴로 를 차단하여 수송중인 보급품 을 탈취한다는 계획이었다. 마 침내 4월 15일 새벽, 적은 예상 대로 영안현 남쪽 황가둔에서 사도하자(四道河子)로 침입하였다. 한중연합군의 포위전략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이에 연합군 각 부 대는 적의 퇴로를 끊고 포위한 뒤 일본군 본대를 향하여 맹공을 퍼부었다. 그 결과 적군은 거의 과반수가 사살되었고 패잔병은 금창구로 도주하였다. 각군은 적을 추격하여 완전히 패주시키고 사도하자 전투 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독립군 전투 일본군 주둔지(흑룡강성 영안시 서문가 일대) 한국독립군 전투지(흑룡강성 영안시 목단강 사도하자 일대) ▶ 동경성 전투 경박호에서 동북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동경성이 있다. 한중연합군은 승세 를 몰아 영안성(寧安城) 공격을 계획하고 1933년 6월 3일 밤 동경성(東京城)을 공격 하였다. 부대를 3개 대로 편성하였는데, 제1로군은 기병대로 편성하여 목단강 연 안 적의 후원부대를 공격하게 하였고, 제2 로군은 1개 여단의 병력으로 교량과 전선 을 끊어 적의 후원병을 공격하게 하였으 며, 제3로군은 동경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3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일본군은 북문으 로 도주하다가 우군의 복병에게 전멸되었 으며, 만주국군은 여단장 곽세재만이 호 위병 몇 명을 데리고 도주하였을 뿐 전부대가 항복하였다. 동경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한국독립군은 150km 강행군 끝에 왕청현 나자구로 이동하였다. 동경성 전투 유적지 입구, 동경성 시내 한국독립군 동경성 전투 유적지 한국독립군, 동만주 일본군과의 대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