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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의 독립군 양성┃59 1910년 겨울, 서간도로 망명하여 경학사, 부민단, 신흥강습소를 창설하고 고난의 시 기를 함께 극복했던 항일지사들이 중심이 되고, 신흥무관학교 교관들과 졸업생들이 힘을 합쳐 길림성 통화현 팔리초 소북차, 사람의 발길조차 닿지 않는 오지의 밀림 속 에 비밀 군사기지 백서농장을 설립하였다. 백서농장 장주(莊主)는 김동삼(金東三), 훈련감독 양규열, 총무 김정제, 의료감 김 환, 영농감 백광운, 교관 허식 · 김영윤 · 김 동식 · 강보형, 교도대장 이근호, 제1중대 장 안상목, 제2중대장 박상훈, 제3중대장 김경달 등이 중임을 맡아 독립군 장병 양성 에 헌신적으로 활동하였다. 1914년 가을부터 소북차 밀림지역을 벌 목하기 시작하여 이듬 해 수천 명의 병력 을 훈련하고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군영(軍營)을 완성했다. 백서농장은 중국당국을 의식하여 농장이 라는 이름을 내걸었을 뿐, 사실상의 독립군 군사기지나 다름없었다. 백서농장에서는 독립군 정예장병을 양성하기 위한 군사훈련에 주력하면서 동시에 자급자족 영농을 겸하는 병농일치(兵農一致)를 채택했 다. 1919년 한족회 결성으로 해산할 때까지 만 5년 동안, 백서농장에서의 혹독한 군사훈련과 극한상황 극 복 의 경험은 이후 항일독립전쟁의 초석이며 근간이 되었다. 백서농장 터,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의 대한독립의 염원이 하늘과 땅을 울리 던 역사의 현장은 옥수수밭으로 변해버린 채 기념비커녕 안내표지조차 없다. 백서농장 유적지 가는 길. 현재는 소북차 일대가 개발이 되 어 밀림 사이로 도로가 개통되었으나 군사기지화로 통행 금지가 되고 있다. 백서농장 유적지, 소북차 마을 모습. 백두산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내리는 용강 산맥 밀림의 오지로 1914년 당시에는 인적조차 닿지 않던 지역이었다. ▶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청산리 전투에 참전하다 1919년 12월, 북간도 지역의 항일무장단체인 군정부가 김좌진, 이장녕 등이 이끄는 북로군정서로 개편되자, 서 로군정서는 몇 차례에 걸쳐 북로군정서에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과 교관을 함께 파견했다. 이후 북로군정서의 핵 심 직책을 맡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1920년 10월 청 산리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또한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으로 편성되어 청산리 전쟁에 참전했다.이와 같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북로군정서의 지휘관, 대한독립 군의 일원으로 합류하여 청산리 전쟁의 최전선에서 격전 을 치르며 독립운동 역사에 길이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서간도 독립군 밀영, 군사기지 백서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