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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의 독립군 양성┃51 ▶ 신흥무관학교 교관 원병상의 회고 “합니하에 병영을 건설할 때 우리는 삽과 괭이로 고원지대를 평지로 만들어야 했고, 내 왕 20리나 되는 좁은 산길 오가며 험한 산턱 의 돌산을 파 뒤져 돌과 흙을 어깨와 등으로 날라야만 되는 중노역이었지만, 우리는 힘드 는 줄도 몰랐고, 오히려 원기왕성하게 청년의 노래로 기백을 높이며 진행시켰다.” ▶ 서간도의 강추위, 마적떼의 습격도 독립의 꿈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서간도 겨울은 9월 말에 시작되어 이듬해 4 월까지 영하 40도의 혹독한 강추위가 몰아치 고 온갖 풍토병이 창궐하고 있었다. 거기다 가 독립자금의 고갈로 신흥무관학교 장병들 은 묵은 조밥, 콩장으로 끼니를 때우며 낮에 는 농토를 일구고, 밤에는 고된 훈련을 견뎌 야 했다. 어찌 그뿐이랴. 승냥이처럼 달려드 는 중국마적의 습격으로 피해를 입었고, 대홍 수와 가뭄이 차례로 몰아치고, 중국인들의 차 별과 방해공작 등으로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 었다. 그러나 신흥무관학교를 이끌어가는 독 립지사들과 훈련생도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며 독립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919년 3.1독립만세의거 이후 만주로 망명해오는 청년들이 날로 늘어났고, 독립에 대한 열기도 높아져 신흥무관학교 본교를 고산자로 옮기고, 통화현 쾌대무자, 합니하 등지에 분교를 열어 확장하였으며, 근 처의 한인마을마다 어학당, 야학 등을 개설하였다. 신흥무관학교 합니하 유적지 가는 길. 통화현 광화진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합니하 입구, 단동에서 통화현고속도로 입구 신흥학교 장병들이 조성한 합니하 학교 터와 농경지 신흥무관학교 합니하 병영터 부민단과 신흥중학 창설 유적지(길림성 통화현 광화진 합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