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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독립전쟁 선언과 준비과정┃43 1. 독립운동가의 만주망명과 독립전쟁 준비 (1910~1919) 2. 항일무장단체 결성과 독립전쟁 (1920~1930) 3. 일본의 만주침략과 대일독립전쟁 시기 (1931~1945) ▶ 만주 독립운동기지 건설 만주독립운동기지 건설계획은 국내 독립운동의 연장으로써 유인석의 북 계책으로 대표되던 의병계통과 비밀 결사단체인 신민회(新民會)에 의하여 구체화되었다. 만주를 독립운동기지로 설정한 것 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접하고 있어 국 내진공이 가능한 입지적 조건 뿐만 아 니라 무장독립전쟁으로의 방향을 전 환하는 의미가 크고, 궁극적으로 일제 세력을 구축하는 것만이 완전한 독립 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 결과였다. 독립전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복벽 주의 의병과 공화주의 신민회의 사상 적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만주독 립운동기지 건설이라는 동일한 목적 으로 실행되었다는 사실은 독립전쟁 준비에 커다란 진전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이 1910년 겨울, 만주 서간도로 망명하여 대일무장투쟁을 준비한 신흥강습소, 경학사 터. 요녕성 유하현 삼원포 대고산 유적지 전경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 승전 기념비 (길림성 도문시)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 승전 기념비 (길림성 화룡시) 1910년 8월 29일, 국치불망(國恥不忘) 어찌 그날을 잊을 수가 있는가. 일제침략자들에 의한 강제병 합, 경술국치, 국권상실의 치욕이 온 겨레를 절망에 빠뜨렸을 때, 항일독립운동가들은 외쳤다. 이제 는 오직 독립전쟁이다!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거세게 타올랐던 삼일만세운동의 거족적인 저항으로도 우리민족은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민족 지도자들은 비폭력 저항운동의 방법으로는 독립을 쟁취할 수 없다고 자각하고, 대일무장독립전쟁을 조직적으로 전개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그 것만이 조국 광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고 만주지역에 무장투쟁을 위한 독립군 기지와 양 성기관을 건립하기로 하였다. 독립군의 대일독립전쟁 선언 우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총칼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