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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 경북 상주 태봉 전투 상주 태봉은 1894년 9월 안동 의병과 1896년 3월 29일 안동의 진, 호좌의진 등 7개 연합의병 이 2차에 걸쳐 전투를 치른 곳 이다. 1894년 일본군이 경 복궁을 점령한 갑오변 란이 있자, 8월 초에 이르러 2천여 명이 참여한 안동의병이 결성되었고, 9월 1일에 600여 명의 의병은 일 본군 병참부대가 있는 태봉을 공격하였다. 함창 관아(현, 함창읍사무소)에서 남쪽으로 약 2Km에 위치하고 있는 태봉리 태봉산(105m)에서 영강쪽 으로 이어지는 소나무밭에는 1894년부터 일본 병참부가 주둔하였다. 이곳의 일본 병참부에서 농민을 체 포하여 수없이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러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안동의병은 화승총과 단검 등으로 무장했으나 전투 경험이 없는 의병이었기에 일본군 제6사단 토고[藤 後] 소위가 이끄는 공병대 25명의 반격을 받고 다수의 부상자를 내고 물러났다. 1896년 3월 29일 안동 · 호좌의진 등 7개 연합의진은 다시 태봉을 공격하였다.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는 저녁 무렵 일본군의 총공격으로 연합의진의 패배로 끝났다. 이후 연합의진은 29일 밤 예천으로 후퇴하 였 다가, 각처 의병본거지로 철수하였다. 태봉 전투 후 안동의병을 추격하던 일본군은 안동 지역을 의병 의 소굴이라 하여 민가 1,000여 호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 울진 영해전투 1895년 명성황후의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1896년 3 월 13일 경상도 영해에서 신돌석을 비롯한 100여 명의 의병이 기의하였다. 영릉 의병장 의 기치를 들고 활동하였던 신돌석은 경기도 광주·이천에서 남한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 었던 김하락 의진과 연합하여 영덕 대격전에 참전하여 승리를 거뒀다. 울진 영해 전투유적지 강구항 일대와 신돌석 장군 생가 안동 의병 전투유적지(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태봉리) 경상의병진의 국권수호 전투 ▶ 문경 고모산성 전투 이강년은 1896년 1월 11일(음력) 경북 문경 도태(道胎)장터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에 고모산성으로 들어 갔다. 그런데 1월 15일 이른 아침 갑자기 일본군이 들이닥쳤다.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전투가 이어졌 으나 문경의병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화약과 탄환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일 본군의 기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지른 불로 말미암아 성문과 마을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