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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봉기와 국권수호전쟁┃23 ▶ 양주 송추일영 고동 전투 전투위치 :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9번길 50 일대, 장흥면 이패상리 고동 전투일시 : 1907년 11월 14일 윤인순 의병진이 장흥면 이패상리 고동에서 400m 정도 떨어진 고양 방향 북방고지 숲속에 매복하고 있었다. 양주경찰대는 의병 130여 명이 내습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헌병분견소의 10여 명과 함께 고동으로 향했다. 당일 오후 5시경 고동으로부터 200m쯤 떨어진 지점에 도 착한 토벌대는 의병을 발견하고 사격을 가하여 양측 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2시간여에 걸친 치열한 전 투 후 잠시 소강상태가 되자 토벌대는 고동에서 숙영을 하였다. 의병들은 야음을 타서 북쪽으로 이동하였 고, 다음날 오전 6시경 고동에서 북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매복하였다. 토벌대는 이를 탐지하 고 다시 의병들을 공격하였다. 화력에서 열세인 의병들은 서쪽 고지를 넘어 파주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양주 송추 고동(현 일영리 일대) 전투지 전경 양주 송추 고동(현 일영리 일대) 전투지 전경과 의병전투 표지판(일영리 경로당내) ▶ 연천 심원사와 법화동, 대광리 전투 1907년 9월 25일 의병 800여 명이 철원 심원 사(深源寺)에 주둔한 정보를 입수한 일제 김화 수비대는 심원사 일대를 포위한 채 공격하였다. 26~27일에 걸쳐 의병들은 일본군과 법화동과 대 광리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화력의 열세로 피해 를 입었다. 같은 해 10월 17일에는 심원사에 있던 의병 300여 명이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후퇴하였 다. 일본군은 의병의 은거지인 심원사에 불을 질 러 전소시켜 버렸다. 1907년 9월 27일 새벽 3시 허위 의병부대 약 150명의 의병은 연천의 법화동(法化洞)에서 일제 의 니시카와 중대와 전투를 벌였다. 1908년 4월 23일에도 법화동에서는 한 차례의 전투가 더 있 었다. 이날 밤 의병 약 15명이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12명이 사망하였다. 1907년 9월 28 오후 3시 허위 의병과 일본군 서천(西川)중대, 백정(白井)중대가 격렬한 전투를 벌렸고 , 이어서 연기우, 이근배 의병진도 연천군 대광리 강변공원 일대에서 연천수비대와 전투를 했다. 그 유 적 지는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1112번지 일대이다. 연천 법화동 전투 유적지 연천 보개산 심원사 전투 유적지 경기강원 의병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