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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 조선혁명군과 동북항일연군의 연합전투 1934년 3월, 흥경현에서 조선혁명군의 간부회 의를 열고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과의 합동작전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였다. 조선혁명군 총사령 양세 봉은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독립전쟁을 수행하 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동북인민혁명군 총 사령 양정우, 제1군 독립사장 이홍광과 연합하여 1934년 3월, 일본군사 기지 유하현 삼원포 습격전 투, 5월에는 통화현 보갑자위대 습격전투, 8월에 흥경성을 공격한 일본군수비대를 물리친 전투 등 수십 차례의 전투를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양 세 봉 이 순 국 한 후, 서 간도 일대 에서 전투 를 계속하 던 조선혁 명군은 동 북항일연 군 제1로군 총사령 양정우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1938년 2월, 부사령 박대호, 제2사 사장 최윤구, 참 모장 최기홍 등 60여 명은 환인현에서 제1로군과 통합하였다. ▶ 조선혁명군 속성군관학교 조선혁명군은 병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화흥중 학을 개편하여 통화현 강전자 동강촌으로 옮기 고, 조선혁명군 속성군관학교를 세워 간부와 병사 를 양성하였다. 교장은 총사령관 양세봉이 담당하 였으며 교육장은 윤동훈, 교관은 장신국 · 홍익선 · 임필순 등이 짧은 기간에 2천여 명의 장병을 양 성하였고, 신빈현, 통화현, 청원현 일대에서 조선 혁명군 후방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조선혁명군은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중앙군 의 규모는 약 500명이었다. 총사령 양세봉, 제1사 령에 박대호, 제2사령에 한검추, 제3사령에 조화 선, 제4사령에 최윤구, 제5사령에 정광배가 조직 을 이끌었다. 조선혁명군은 길림성 임강 · 집안 · 유하현 삼원포 및 청원 · 무순 등지의 광범한 지역 에서 1938년까지 10여 년 동안 항일독립전쟁을 수 행했다. 국민부 조선혁명군 활동 유적지(길림성 신빈현 하북 일대) 양정우와 이홍광을 기리는 기념관 길림성 통화현 조선혁명군 쾌대무자 전투지 (길림성 통화현 쾌대무자진 인민정부와 대무산 일대) 조선혁명군 속성군관학교 유적지(길림성 통화현 강전자 동강촌) 조선혁명군, 한 · 중연합군 결성과 독립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