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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 한중연합군을 결성하다. 북만주에서 한국독 립군이 중국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동안 남만주에서는 조 선혁명당 소속 조선혁 명군이 중국의용군 총 사령관 이춘윤과 교섭 하여 한 · 중연합군을 결성하였다. 중국의용군 약 2만 여 명의 병력을 갖고 있는 이춘윤부대는 일 찍이 안봉철도 연선인 봉황성에서 활동하다 가 일본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피하여 봉천성 흥경(興京)으로 오게 된 것이다. 혁명군 본부를 흥경현 왕청문에 두고 있던 조선 혁명군은 양세봉 총사령관의 명령으로 중국의용 군 이춘윤 부대의 입성을 환영하고, 한 · 중양군의 대표인 양세봉과 이춘윤이 굳은 악수를 나누니 이 로써 만주탈환과 한국광복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힘찬 협동전선이 이루진 것이다. 이 날 흥경성문 에는 태극기와 중국국기인 청천백일기가 나부꼈 으며, 곳곳에는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하여 엄중한 경계망이 펼쳐지고 있었다. ▶ 국민부운영위원장 양기하 순국하다. 조선혁명군은 1932년 2월 10일 관전현 하로하 4 도구촌에 주둔 중 일본군과 만주군의 기습적인 협 공을 받아 국민위원장 양기하와 수십 명의 장병이 전사하는 불운을 겪었으나, 이에 절망하지 않고 양 세봉을 총사령관으로 추대하고 정예의 군대로 훈 련하며 재기하였다. 조선혁명군 본부와 활동지 요녕성 신빈현(위) 영릉가(아래) 조선혁명군 양기하 순국유적지(요녕성 관전현 하로하 4도구촌 양기하 석상) 흥경현 사건 발생지(요녕성 신빈현 하북 일대와 신빈현 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