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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만주지역 전민족유일당 운동 만주지역 항일무장독립단체인 참의부, 신민부, 정의부, 3부는 통합적인 무장독립투쟁을 위해 1927 년 4월 15일 길림시 신안둔(新安屯)에서 정의부 주 도로 민족유일당 촉성을 위한 제1회 각 단체 대표 자회를 개최하였다. 만주지역의 전유일당 운동은 1928년 2월 3일 흑 룡강성 영안시 영고탑(寧古塔)에서 열린 3부 간부 들의 회합, 같은 해 5월 12일부터 26일까지 반석(磐 石)과 화전(樺甸)에서 열린 18개 단체대표 39명 참 여의 ‘민족유일당촉성회의’등으로 전개되었다. 그 런데 민족유일당운동에 참가하였던 여러 단체와 주요인물들은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그리 고 통합조직의 방법론을 둘러싸고 크게 두 집단으 로 분열되었다. ▶ 한국독립군과 조선혁명군 양대세력으로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중국동북지방 의 항일무장독립투쟁은 민족유일당의 형성과 3부 통합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북만주를 기반으로 결 성한 한국독립당, 한국독립군 남만주를 기반으로 한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계열의 두 흐름으로 양 분되어 수행되었다. 만주지역 항일무장세력이 한 조직으로 통합되지는 못했지만, 지역과 역할을 분 담하여 당(黨) · 정(政) · 군(軍) 체제를 구비하게 된 사실은 독립운동단체의 역량강화와 적극적 대일무 력항쟁을 위해서 선택한 차선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민족유일당 운동 회의 장소(흑령강성 영안시 영고탑) 신빈현 영릉 누르하치 묘와 신빈현 중앙로의 모습 민족유일당 회의 유적지(길림성 반석빈관, 화전현 휘발하진) 요녕성 무순시 신빈현 왕청문진 일대에는 국 민부와 조선혁명군 관련 유적이 많이 있을 뿐 아니라 총사령관 양세봉이 수많은 전투를 전 개했던 남만주 항일의 중심지로 당시 서간도 일대 한인사회에서 ‘서울’이라 불리던 곳이다. 흥경현(興京縣 현재 : 신빈현)은 청나라 시조 누르하치가 청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았던 곳 으로 만주족 최대의 성지이며, 1930년대 독립 운동의 중심이었던 국민부(國民府), 조선혁명 당, 조선혁명군, 항일연군 등 활동지였다. 만주지역 전민족유일당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