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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④ 93 정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공문과 사사로운 편지까지 도 모두 국문의 사용을 금하고 순전히 일본글을 쓰도 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멀지 않는다면 훗날 우리 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 장차 한 사람의 한인도 볼 수 없을 것이니, 한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7일 단단한 얼음이 비로소 풀리고 개울물 소 리가 크게 울린다. 홀로 객창에 기대어 있으니, 만리 고향의 여러 아우들과 조카들이 면면이 가슴에 떠오 른다. 그 중에서도 건초(健初 : 이상동) 아우가 협곡의 우소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가장 눈에 삼삼하여 거의 진정이 되지 않는다. 인하여 율시 한 수를 짓다. 18일 비서장(賁西丈 : 김대락)과 더불어 조국이 패망한 원인을 논하였다. 비서장은 “정사의 부패와 도덕의 쇠퇴, 기강의 문란과 풍속의 괴폐를 두루 설 명하고 이러고도 망하지 않을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 가” 하였다. 나는 그에 응하여 이르기를, “어른의 의론이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체로 나라란 형적이 없는 하나의 법인(法人)이니, 그 발흥함이 마치 사람이 처 음 태어나는 것과 같고, 그 융성함이 마치 장성해지 는 것과 같으며 그 쇠약해짐이 마치 늙어 병드는 것 과 같습니다. 병들어 장차 죽을 때가 되면 패망의 증세가 겹겹 이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그 겹겹이 생겨나는 증세를 거론하여 말하기를, ‘아무 증세 때문에 죽었다.’고 합 니다. 그러나 이는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낱낱이 안 것은 못됩니다. 사람은 원기(元氣)로써 살아 움직 이니, 원기가 흩어지면 죽습니다. 나라는 민심으로써 유지되니, 민심이 흩어지면 망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자기 일신만 알고 다시 사회 전체 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외방 의 침탈과 모멸을 당하는 처지에 이르렀음에도 상하 귀천을 막론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은 이 미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법인의 원기가 흩어져버렸 으니 어찌 사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로 김대락의 『백하일기』에 실린 「분통가」(경북독립운동기념관). 김대락 은 나라잃은 분통을 이기지 못하고 1913년에 이 노래를 지었다. 안동 내앞마을(천전리)에 있는 김대락의 생가 ‘백하구려(白下舊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