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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023년 6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한 번 더 생각하는 역사 북한정권은 그들이 별세한 뒤 ‘애국렬사릉’에 모 셨다. 여기서 잠시 북한의 국립묘지인 ‘혁명렬사릉’ 과 ‘애국렬사릉’에 관해 살피기로 한다. 북한정권은 1954년에 현재 평양특별시 대성구역 대성산(大城山) 기슭 미천호 옆에 「혁명렬사묘역」을 조성하고,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의 주역’인 혁명 1세대의 유해를 안치했다. 이것을 1975년 조선로동당 창건 30주년을 맞아 전망이 좋은 대성산의 새 자리로 옮 겼으며, 1985년에 창건 40주년을 맞아 김정일의 주 도로 새롭게 단장했다. 김일성의 아내이자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 그리고 김일성의 숙부인 김형권과 동생인 김철주 등이 묻혀있다. 북한정권은 그 다음 급의 국립묘지로 평양의 형제 산구역 신미동에 ‘애국렬사릉’을 조성하고 1986년에 문을 열었다. 북한 인사로는 부수상을 지낸 홍명희,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허헌,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중앙재판소장을 지낸 허정숙 등이 묻혀있는데, 바로 이곳에 납북된 임정 요인들 의 유해도 모신 것이다. 기념사업회는 북녘으로 납북되어 그곳에서 세상 을 떠난 조상의 성묘를 후손이 할 수 있도록 통일부 의 승인을 받고 「남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약 칭 민화협)」를 통해 북측 민화협과 몇 차례 접촉했 다. 그 결과 우여곡절을 겪은 뒤 결국 2006년 9월 30 일부터 10월 4일 사이에 유족 28명과 실무자 22명 등 모두 50명이 평양 근교 신미리에 있는 ‘애국렬사 릉’ 그리고 이 ‘애국렬사릉’의 분릉으로 용궁동에 있 는 ‘재북인사묘’에 성묘할 수 있었다. 김자동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 모두의 흔들림 없는 의지와 끈질긴 교섭의 산물이었다. 재북 애국지사 묘역 방문, 다시 열려 이어져야 방북한 유족 대부분은 선인의 묘지가 이러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며, 묘지와 묘비 앞에 섰 을 때, 김자동 회장의 표현으로, “눈물을 흘리며 흐느 꼈다.” 예컨대, 조완구 선생의 외손녀는 “53년을 기다 리시다가 2년 전에 떠나신 엄마를 생각하니 애달프 고 안타까운 마음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언니는 자꾸 흐느끼고, 저는 제물을 차리는 손이 떨립니다. 황태포 하나에 술 한잔, 그리고 대전에서 가지고 온 모래에 향 하나 꽂고, 꽃다발 한 단을 놓은 조촐한 제물이지 만 마음은 아주 부자예요. 분단을 넘어 이곳 평양에서 할아버지께 추석 성묘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펄펄 뛰고 싶을 정도로 좋으니까요”라고 썼다. 이러한 후손들의 소감을 읽은 독자들은 무엇보다 그들의 효심(孝心)에 감복하면서 동시에 분단과 전쟁 의 비극을 다시 실감했을 것이다. 재북 애국지사 묘 역 방문은 이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남북대화를 통 해 다시 열리고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1943년 중국 심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트주립대와 피츠버그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단국대학교 이사장, 인천 대 학교 총장, 동아일보사 사장·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필자 김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