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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23년 6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를 알리는 데 주력하였다. 이듬해 1월에는 부 설기관으로 간호원양성소를 설립하여 간호 원 양성 활동도 겸하였다.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국내외에서 활발한 군사 활동을 벌 였다. 이에 발맞춰 김순애도 같은 해 1월 상 하이에서 임시의정원 의장 손정도, 교통부차 장 김철, 국무원비서장 김립, 재무부차장 윤 현진, 경무국장 김구 등과 함께 대한의용단 (大韓義勇團)을 발기하였다. 민족교육기금 조성운동 전개와 임시정부 후원 1920년 9월부터 상하이의 대한인거류민 단을 중심으로 국외 한인 교육의 기초를 확 립하고자 민족교육 기금 조성 운동이 전개되 자,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 당시 여운홍(呂運 弘)이 교장으로 있던 상하이 한인 동포 자제 의 민족교육 기관인 인성학교(仁成學校)의 유 지비를 지원하고, 교사 신축비를 모금하는 데 노력하였다. 또 같은 달 30일 열린 상하이 대한인거류민단 총회에서 18인 의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임명되었다. 1923년 1월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 지역 대표가 독립운동 방략과 조직의 재정비를 위 한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하였다. 5월까지 개 최된 이 회의에는 국내외에서 120여 명의 대 표들이 참석하여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임 시정부를 둘러싸고 해체 후 새 정부 조직을 주장한 창조파와 유지 및 개편 · 보완을 주장 한 개조파가 서로 대립한 것이다. 김순애는 이 회의에 대한애국부인회 대표 자격으로 참 석하여 애국부인회의 입장인 개조론 대신에 창조론을 찬성한다고 밝히며 김규식과 노선 을 같이하였다. 이 일로 대한애국부인회의 대표직을 상실하면서 부인회와 결별하였다. 1926년 7월 안창호 · 엄항섭 · 송병조 등과 어려운 임시정부의 재정지원책을 모색하여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창립했다. 안창호 · 조 상섭 · 조마리아 등과 같이 정위원에 선출되었 다. 임시정부의 자금난 해결을 위해 인구세 상하이 대한애국부인회장 김순애가 보낸 편지(1919.6)  김순애 등의 활동을 보도한 『독립신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