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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23년 6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참판까지 지냈으나, 을미사변 이후 관직 떠나 항일투쟁 나서 민종식은 1861년(철종 12) 3월 4일 경기도 여주에서 민영상(閔泳商)과 기계 유씨( 俞 氏)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 (驪興), 자는 윤조(允朝), 호는 퇴초자(退樵子) 이다. 그는 여흥민씨 가운데서도 권세를 떨쳤던 삼방파(三房派) 집안으로 증조부인 민치병(閔 致秉)이 명성황후 민씨의 생부인 민치록(閔致 祿)과 재당질 사이다. 부친은 명성황후의 조 카뻘로 문과에 급제하고 충청도 관찰사를 비 롯하여 이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고종(高宗)의 신임을 받은 고위 관료였다. 20살 되던 해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체구 와 얼굴이 크며 성긴 구레나룻을 하고 있었 던 것으로 보아 문신이면서도 동시에 무인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예 문관 검열 등을 거쳐 1886년(고종 23)에는 시강원겸사서에 올랐고, 다음 해에는 인사 권을 관장하는 이조 전랑에 임명되었다. 이 후 대사간 등 요직을 거친 다음 1891년부터 1892년에는 예조, 이조, 형조 참판을 역임하 는 등 종2품의 품계까지 올랐다. 핵심공적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먼저 동지들을 규 합하고 무기를 구입하여 이 듬해 5월 의병을 일으켰다.  1906년 5월 일본 헌병이 주 둔하고 있는 홍주성을 점령 하였다. 일본군에 패한 뒤  1907년 7월 평리원(平理院) 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으나  고종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 건국훈장 대통령장 민종식(閔宗植) 의병장 대한제국기 의병전쟁에 큰 영향 1906년 홍주의병 봉기, 의병대장 활약 주요약력 ● 1861년 3월 4일 경기도 여주 출생 ●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 낙향 후 홍주의병장에      추대됨  ● 1906년 5월 홍주성을 점령했으나, 일본군에 패배      재기 도모 중 11월에 체포됨 ● 1907년 평리원에서 교수형 선고 후 순종 즉위 기념      으로 사면  ● 1917년 6월 26일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에서 타계 “슬프다. 저 일본이 을미년 8월에 이르러 우리 국모 를 시해하였다. 이어서 을사년 10월에는 우리 정부  대신과 결탁하여 우리 군부(君父)를 협박하고, 5조 약을 늑성하여 우리 국권을 점탈하였으며, 우리 생 령(生靈)을 노예로 하였다. 이에…… 병오년(1906)  봄에 동지를 규합하여 의병 일으킬 것을 제창하였 다.” - 선생의 판결문 중에서(1907.7) - 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