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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안동 이육사문학관 113 그래서 그럴까? 안동은 과거급 제자가 서울(한양)을 제외하고 가 장 많이 배출되었고, 독립운동가 도 가장 많이 나왔다. 이상룡, 김동삼, 류인식 등 과 함께 안동 지역을 대표하 는 독립운동가는 이육사(李陸 史·1904.4.4~1944.1.16)라고 할 수 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광 야’와 ‘청포도’ 시가 소개되어 우리 에게 친숙한 이육사는 일제강점 기 기자 · 시인 ·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약했다. 안동 전통계승한 민족시인 · 독립 운동가 이육사 1904년 경상북도 예안군 의동 면 원촌동(현 안동시 도산면 원천 리 원촌마을)에서 퇴계(退溪) 이 황(李滉)의 14대손으로 태어났 다. 본명은 원록(源祿) 또는 원삼 (源三)이며, 활(活)로 개명했다. 조 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 남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25년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 했다. 이황의 후손이라는 명문가 의 자존심과 지역정서, 시대적 연 계망 등은 그를 독립운동에 투신 하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1926년 중국 베이징으로 가서 수 학하였고, 1927년 장진홍의 조선 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 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 를 치렀다. 그때의 죄수 번호 264 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육사 문학관 옆에 위치한 육우당 출옥 후 다시 중국에서 독립운 동을 계속하다가, 1933년 귀국하 여 불후의 명시(名詩)들을 발표했 다. 1943년 다시 중국으로 가 독 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후 1944 년 1월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 였다. 2004년 그의 고향인 안동에 이육사문학관이 세워졌다. 안동 시에서는 이곳 강변도로를 ‘이육 사로’로 개칭하여 그를 기념하고 있다. 이육사는 일제 강점기에 끝까 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 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평가된 다. ‘청포도’, ‘교목 (喬木)’등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목 가적이면서도 웅 혼한 필치로 민족 의 의지를 노래했 다. 1946년 신석초(辛石艸)를 비 롯한 문학인들에 의해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이 간행되었 고, 1968년 고향인 안동에 ‘육사 시비’가 세워졌다. 이육사의 시는 독립에 대한 의 지와 항일 투쟁에 대한 내용을 담 고 있지만,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 하기 보다는 언어적 정제를 통해 화려한 상징과 은유를 사용함으 로써 이러한 정신적 의지를 드러 ➌ ➌ 문학관에 전시된 이육사 사진.  주위 지인에게 증정한 것이다(1941.4.29.)  ➍ 시 ‘편복(蝙蝠, 박쥐)’ 원고 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