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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2023년 6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1932년 4월 29일, 한인애국단 의 윤봉길 의사는 일제가 천왕 생 일 천장절(天長節) 행사 및 상해사 변 승리축하식을 여는 홍구공원 가설무대에 폭탄을 던졌다. 의거 현장 30~40m 떨어진 곳에 윤봉 길 의거를 기념하여 세운 매정(梅 亭)과 기념비가 있다. 2000년에 갔을 때는 텅 비어있었는데, 지금 은 의거를 기념하는 전시물이 잘 정리되어 있다. 윤봉길 의사 자취를 더 밟으려 고 양포구(楊浦區)로 갔다. 윤의사 가 거사 후 체포되어 일본으로 끌 려가기 전까지 갇혔던 헌병대 건 물이 있어서였다. 공동주택으로 쓰는 3층 건물인데 아직도 견고 히 서있었다. 안창호 선생이 갇혔 던 기록도 있다. 한국인으로서 윤 봉길 의사가 의거 직후 끌려와서 혹독한 고문을 당한 건물 앞에 서 서 눈물 안흘릴 자가 누가 있으 랴. 나는 동행한 원광대의 김주용 교수, 서울신문 신문의 안주영·류 지영 기자와 함께 모자를 벗고 묵 념을 올렸다. 입구에 쇠창살 문이 막혀 있지만, 그곳이 윤의사님 갇 혔던 유치장임은 대번에 알 수 있 었다. 헌병대 뒤편 길목을 서성거리 다가 그곳이 일본인 고관, 장군 들 의 관사촌임을 알아냈다. 2~3층 고급주택 수십 채로 남아 있었다. 내가 장편 팩션『마지막 무관생도 들』의 세 주인공 중 하나로 쓴 홍 사익(洪思翊) 중장도 거기 살았다 는 기록이 있다. 그때 홍사익은 육군대좌로 서 직책은 흥아원(興亞院) 화중연락 부의 국장이었다. 흥아원은 일본 이 중일전쟁으로 점령한 지역을 통치하고 경영하기 위하여 외무 성과 군대가 합작하여 만든 기구 였다. 1908년 대한제국 마지막 무관 생도들은 학교가 폐교되고 일본 유학을 떠나 일본 육사를 나왔다. 일본으로 실려 가면서 ‘일본에 순 치당하지 말자’라고 결의했고, 군 사교육을 받던 중 강제합병 소식 이 오자 인적 드문 아오야마(靑山) 묘지에 모여 때가 오면 독립전쟁 에 투신하겠다고 결의했다. 그러 나 결행한 사람은 지청천(池靑天)· 도산 안창호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갇혔던 옛 일본 헌병대 건물(2018년 12월) 헌병대 건물 뒤편의 일본 관사들. 견고해서 지금 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