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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례의 ‘만주 · 연해주 독립운동,  그 현장을 가다’연재에 이어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 그 현장을 가 다’를 세차례 - 상하이(上海) · 난징 (南京) · 광조우(廣州) - 연재하기로  한다(편집자 주).  상하이는 아편전쟁 직후 체결된  난징조약(1842년)으로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열강의 조계지가 설정 되면서 각국이 이권을 다투는 무 대가 되었다. 1910년을 전후하여  많은 독립운동가가 이곳으로 갔다.  국내외 독립운동지도자들이 모여  동제사, 신한청년당 등을 결성해  투쟁했다. 상하이에서 1919년 임 시정부가 수립되고, 이후 의열단,  대한교민단, 독립신문사, 한국노병 회, 병인의용대, 인성학교, 철혈단  등의 많은 독립운동단체가 활동했 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 때까 지 상하이는 독립운동의 중심지였 고 이후에도 중요한 장소였다.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 그 현장을 가다 ① 임시정부 소재지 상하이 글  이원규(소설가) 임시정부 지사들, 의열단, 윤봉길 의사 혼이 서린 상해  의열단 황포탄 의거 현장 빌딩 숲으로  변하고 안창호 · 윤봉길 갇혔던  헌병대는 그대로  106 2023년 6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보경리 임시정부 청사 내가 상하이(上海)에 처음 간 것 은 중국과 수교하기 전인 1991 년이었고, 마지막 답사는 2018년 12월 서울신문의 ‘임시정부 100 주년 특별취재단’에 속해서였다. 상하이는 아편전쟁 직후 체결 된 남경조약(1842년)으로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열강의 조계지가 설정되면서 각국이 이권을 다투 는 무대가 되었다. 1910년을 전후 하여 많은 독립운동가가 상해로 갔다. 대한제국 군인 출신인 신규 식(申圭植) 선생은 중국 혁명 인사 들과 친교를 맺고 있었다. 이를 계 기로 국내외 독립운동지도자들이 모여 동제사(同濟社), 신한청년당 등을 결성해 투쟁했다. 2018년 취재 때 제일 먼저 찾 은 곳은 보경리(普慶里)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이다. 상하이에서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이 후 의열단, 대한교민단, 독립신문 사, 한국노병회, 병인의용대, 인성 학교, 철혈단 등의 많은 독립운동 단체가 활동했다. 1932년 4월 윤 봉길 의사의 홍구(虹口)공원 의거 이후 항주(杭州)로 이동할 때까지 상하이는 독립운동의 중심지였고 이후에도 중요한 장소였다. 최초 임시정부 청사는 김신부 로(金神父路)에 있었지만 여러 곳 으로 옮겼고, 확인된 것만도 12차 례 이상이다. 1926년 3월 안정적인 청사를 마련한 곳이 이곳 백래니몽(白來 尼夢) 마랑로(馬浪路) 보경리 4호 였다. 그동안 바깥 골목이 깨끗 해지고 아래층 홀에 동영상 자료 가 펼쳐지는 등 변화가 있지만, 2 층 3층 청사 내부는 그대로 잘 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