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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암 한귀재 선생 공적비 선생은 1910년 1월 29일 고 승환공의 장남으로 이땅에서 태어나 1980년 12월 2일 영면하시다. 조국이 근대화의 여명을 맞은 1920년대에 약산학교에 재학 중이던 소년 해암은 고 박성래선생등의 지도 아래 문맹퇴치등 계몽운동에 활동하셨으니 선생의 사회봉사와 지도자로서의 인격형성은 이때에 이루어졌으리라. 1929년 서울에 유학하여 고학당에서 수학을 하셨고 이래 지하조직에 다담하여 항일전선에서 활동하시다 1933년 이른바 전남협의회 사건으로 3년간의 옥고를 치르시키도 하였다. 광복후에는 오직 지역개발에 전념하시니 지방민들의 숙원이었던 해동국민학교를 설립, 용문교의 가설, 해동제의 축조등 사업을 20년간에 걸쳐 수행함에 있어 추진회장 등 지도적 위치에서 인화를 기하고 공정을 지표삼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데 기여하시었다. 선생은 가난 속에서도 항상 마음은 풍족하시었고 공정무사 더불어 사는 서민의 귀감이셨으니 호국애향하신 선생의 덕을 기린 동료후배들은 영면에 즈음하여 삼가 여기 이 뜻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