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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경남 양산 출신인 그는 1926년 동요 「고향의 봄」을 작곡했고 평생을 대한민국을 대표하 는 아동문학가로 활동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남부끄러운 그림자가 존재했다. <함안독서회 사건>으로 1935년에 구속되기도 했던 그가 친일의 길을 걸은 것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부터였다. 조선 청년들에게 일본군에 지원할 것을 권하는 글을 쓴 것이다. 내선일체에 관한 글 5편 을 쓴 것이 그의 사후인 2002년에 세상에 드러났다. 그런 연유로 그는 2008년 민족문제 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해방 후부터 작고하기까지 이원수는 반전, 평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글을 써 왔다. 실 제의 삶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그의 과거(일제강점기) 전력이 드러나면서 그의 빛이 하루 한순간에 소멸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원수선생은 역사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 반전과 평화를 꿈꾼 참지식인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왜 그럴까? 그의 후손과 그를 따르는 이들이 이원수 선생의 일제강점기 말 치부를 숨기지 않고, 진 솔하게 사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 등재 이후 그의 유족들은 이원수의 친 일행위(반민족행위)를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또한 경남 양산에 있는 그의 문학관 홈페이 지에는 그의 친일행적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과연 이런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요즘 정치권을 보면 자신과 우리 역사의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 다. 심지어 이완용 등 민족반역자(친일파가 아니다)를 변명하기에 급급한 이들이 많다. 강제동원된 이들에 대한 보상을 대한민국 기업에서 부담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거의 부끄러움을 솔직히 인정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원수 선생과 그의 유족, 이원수 문학관의 진솔함이 요구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