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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8년 7월 2일 이강년이 이끄는 의병 부대가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곳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 산19 충청북도 청풍군 북면 산야 원형보존 - 1908년 여름 제천의병에 대한 일본군의 포위망은 나날이 좁혀들고 있었다. 5월부터는 단양 · 청풍 일대의 대토벌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미 중요한 의병부대는 하나하나 무력화되고 있었 으 며, 무대를 호남지역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충북지역에서 연합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강년 역 시 이후 배향산 부근에서 탄약을 보충하고 남으로 내려가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강년 부대는 작성산( 鵲城山 )에 이르러 장맛비를 만났다. 마침 이 일대에는 단양에서 출발한 수비대 아오지마[靑嶋 ] 소위 이하 21명의 일본군이 제천 경찰서의 순사들과 함께 두 방향으로 나뉘어 정찰 활동을 하고 있었다. 7월 1일부터 이강년 부대는 소야동 쪽을 정찰하던 경찰과 헌 병대 6명의 추적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다음날 2일 새벽에 70여 명의 부하들을 인솔하고 포전 리에서 작성산 기슭으로 이동하다가 기습을 받아 2시간 남짓 교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강년 은 왼쪽 발목에 관통상을 입고 계곡 쪽으로 은신하였다가 추적해 온 모리[ 森 ]순사에게 체포되 었다. 이 전투에서 도선봉 하한서( 河漢瑞)를 비롯한 7명의 장졸이 전사하였고 이강년은 서울로 압송되어 사형을 당했다. 작성산은 제천 금성면 중전리와 포전리에 있는 산이며, 『문화유적분포지도』에서 따르면 작성 에 산성이 축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성산성은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 작성산에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을 둘러 쌓은 산성으로 학산성( 鶴山城)·또는 까치성이라 부른다. 일제강점기 자료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이 산성을 ‘학산성이라 칭하며, 산 정상부와 계곡 상부를 두른 둘 레 700칸의 석벽이 거의 대부분 붕괴되고 일부는 천험을 이용한 준험한 암석지’라 기록하고 있 다. 작성산성은 포전리 마을을 지나 올라갈 수 있는데, 마을 입구에는 ‘금수산 까치산성’이라고 하여 표지석을 세웠다. 이 길을 따라 1.2㎞ 정도 올라가면 산성으로 갈 수 있다. 작성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