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page

문송면(당시15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73년 충남 서산 출생 1987년 12월 5일 야간공고 진학을 위해 영등포 협성계공(주)에 입사 1988년 2월 8일 휴직계 제출 1988년 3월 14일 수은중독 진단받음 1988년 4월 7일 노동부 서울 남부지방사무소에 산재요양신청서 제출 노동부, 산재요양신청서 처리지연 1988년 6월 29일 여의도 성모병원 직업병과로 전원함. 점차악화 1988년 7월 2일 운명 |28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87년 12월 영등포 소재 협성계공에 입사한 동지는 불과 2개월 만에 수은중독 증상을 보여 6개월의 투병 끝에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향 충남 서산에서 상경한 동지는 야간고등학교를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이 회사에 들어와 하루에 11시간씩 압력계 커버의 신나세척, 페인트칠, 온도계의 수은주입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수은이 새어나와 작업장의 공기 가 수은증기로 온통 뿌옇고 바닥에도 액체가 된 수은이 널려있는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형식적인 개선명령만 내려놓고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 하지 않았다. 작업 중에도 불면증, 두통, 허리와 다리의 통증 등의 증세가 나타났 으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전신발작으로 악화된 후 4군데의 병∙의원을 전전하고서야 서울대병원에서 수은 및 유기용제 중독 진단을 받았다. 이 진단에 따라 가족들은 4월 7일 노동부에 산재요양신청서를 냈으나 회사의 방해에 놀아 난 노동부는 10일 만에 산재요양신청서를 반려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이 일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6월말에야 요양승인이 나왔으나 산 재지정병원으로 옮긴지 이틀 만에 동지는 운명하고 말았다. 당시 동지의 나이는 만 열다섯 살이었다. ‘ …동지의죽음은사업주의안전시설에대한올바른인식과작업환경개선만으로도노동자 의건강한생명에직결되는많은산재및직업병을방지할수있음에도이를방기한채, 결국에 는연소자의생명마저도빼앗아자신의기름진배를채우겠다는비인간적이고, 탐욕스런욕망 을드러내고야만것이다. 오늘도이땅에서는, 기업주의안전에대한인식부족, 장시간노동과 작업강도의강화등으로노동자의과로그리고안전교육, 행정감독등의미비, 산재방지를위 한대책의결여, 수출지향적파행구조의희생물로매일5명의근로자가숨져가고있으며약3 일에2명꼴로직업병유소견자가새로생겨나고있는현실입니다…’ - 1988.7.9. 건상사회실현약사협의회성명서중에서- 끝내살리라 |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