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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編 서원 · 제단 · 기념관 • 141 3. 추모사 삼가 우연(子淵) 홍익표(供줬杓) 선생님 영전에 드립니다 고매(高適)하신 생애를 오직 정치발전에 이비-지 하시고 침-된 민주헌정을 염원하시 면서 살디- 가신 선생님, 많은 정치학도의 사표( I떼表)로서 또 저희들 후학들의 스승이시지, 큰 형님 처럼, 어버이처럼 범사에 사표가 되 셨고, 가르치심에서는 인자하고 관후하심이 항상 저희 들을 감동케 하셨으며, 어려움을 극복하실 때에는 추호도 난색을 나타내심이 없으셨던 서 생님 영전에 재배 드리오며 추모의 하정 (下情)을 이 길 수 없어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조경하옵는 우연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토록 사랑을 베풀아 주시던 저희들을 남기시고 선향(仙짧1))에 드신지 어언 24주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돌이 켜 살피면 날아가는 화살처럼 빠 르기만한 세월을 저희들은 너무도 무심히 살아왔음을 자주 뉘우치곤 합니다. 이 나라 민주 정치발전에 남기신 선생님의 위업을 찬양하며 유훈을 배우고 받으러 후세에까지 전승하고 또 기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에까지 선생님의 정신문화를 꽃피울 장소조치- 이룩하지 못하던 중, 국민정부의 배려와 후인의 헌재(鳳財)로 조출하나마 이 곳 선생 님 묘하애 기념 과을 세웠습니다 오랜 세파 속에 산재했던 유품을 모으고 선생님 생전의 모습을 영정으 로 모사하여 당내에 모시 니 선생님의 친안을 봐 옵는 듯 경모하는 저희들의 정회(情懷)가 배증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제식민지통치가 극에 달할 무럽 정성제일고보 (현 경기고등학교)와 경성제 국대학 법문학부 (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하시어 딩-대 출세의 요건을 갖추셨으나 나라 의 실권회복과 낙후한 농경사회계도에 힘쓰시다가, 8 .15 광복을 맞이하셨고 1없8년 정부가 수 립되어 주권국민의 대변자로 선출하는 제헌국회의원에 무투표로 당선되셨으니 이는 선생님께 기대하는 가평군민의 절대적 인 성망(聲望)이었다고 김-히 말씀드립니다 그리하여 국회 헌법기초 위원으로, 반민특위검찰부장으로, 선생님은 임기 중 휴일이 없으셨다고 저희들은 듣고 있습니다. 이어 재선, 삼선하시는 동안 국회 원내총무로서 또 민주당 총무부장으로, 더욱 4대 국회시절에 는 독재로 기운 자유당 정권과 상대한 민주당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치열한 선거전을 진두지휘 하신 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1960년 5대 국회의원으로 4선되셔 내각책임제 하의 민주당 정부가 출범 하지- 선생님은 초대 내무부장관이 되 셨으나 국가발전을 위하여 당의 대단합을 도모하고지- 스스로 자리를 내어, 영입(迎入)인사(人土)에게 참여의 길을 터주신 일은, 후인(後人)이 명심하여 배우고 실천하여야 될 모헌(換恩)을 설정해주신 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후, 5선, 6선하시면서 야당 대통령 후보 단일화 추진을 비롯하여 당 조직의 결집력을 키우셨고 정딩-은 국리민복을 기조로 하는 정제정당이 되어야 한다 하시며, 심혈을 기울이 신 일들은 불휴의 교훈으로 남을 것입 니다. 10 . 17 유신(綠新)사태(콸態)로 국회가 해산되어 재야에 묻히신 선생님의 허탈해 하신 모습은 지금도 저희들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제헌의원으로서 헌법을 기초하사, 현대 법치사회건설과 자유민주주의를 신봉 실천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