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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 - 어린 학생 등을 일으켜 세워 '빨갱이 가족'을 찾아내라고 들볶던 군인들은 이 일이 여의치 않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민 몇 십 명씩 끌고 나가 학교 인근 '당팟'과 '너븐숭이', '탯질' 밭에서 사살하기 시작했다. 이 주민학살극은 오후 4시경 대대장의 중지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교단에 오른 현장지휘자는 먼저 민보단 책임자(장운관)를 나오도록 해서 '마을보초 잘못 섰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즉결처분했다. 또 두 명의 여인에게도 총격이 가해졌다. 군인들은 다시 군경가족을 나오도록 해서 운동장 서쪽 편으로 따로 분리시켜 갔다. 이때 교문 쪽에서 총성이 들렸다. 한 어머니가 아기를 안은 채 싸늘히 식어갔다. 배고파 울던 아기는 죽은 어머니의 젖가슴에 매달려 젖을 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