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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복(韓永福, 이명 韓時良, 韓花農, 韓世良, 韓南濃)은 1921년부터 1931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외교부 북경 주재 외교위원(外交委員), 대한대독립당주비회(大韓大獨立黨籌備會) 기관지 기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6월 중국 북경(北京)에서 신채호(申采浩)ㆍ이회영(李會榮)과 함께 잡지 『천고(天鼓)』를 창간하였고, 같은 해 8월 15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 북경 주재 외교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9월 25일 북경 거주 조선기독교청년회 소속 회원들과 박용만(朴容萬)이 주도한 군사통일회(軍事統一會)와 보합단(普合團)에 독립운동자금 등을 후원할 것을 협의하였다. 1921년 이광(李光)ㆍ조성환(曹成煥) 등과 교육회를 조직하고 『부득이(不得已)』란 신문을 발행하였으며, 1922년 국한문 신문 『독립공보』를 발행하였다. 1930년 대한대독립당주비회 기관지 『조선(朝鮮)의 혈(血)』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1931년에는 북경 조선유학생회 조직을 지도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