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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자 하니 여러 사람과 함께 나오라" 하는 일종의 사발통문이었다. 공께서는 독립만세를 부르자는 내용의 통문에 찬성하시여 동.리 사람들을 모아놓고 "지금 사발통문이 돌고 있으니 3월 30일에는 모두 신북면 사무소로 가서 만세를 부르라" 하시였다. 그리고 함병현, 김수종 등에게 각 동.리마다 사발통문을 보내 만세운동을 일으키도록 널리 선전하시였다. 3월 30일 신북면 사무소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공과 사발통문으로 이 소식을 듣고 만세운동에 동참한 사람이 1천여명이나 되었다. 이와 같이 공께서는 동.리(洞理) 지도자로서 타면까지 나가시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시였고 일신의 안위를 저버리고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 하셨으나 그후 밀고에 의해 만세운동 주도자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함흥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고통을 격으시며 옥살이를 하시였다. 그후 고생고생 하시다 1971년 2월 4일 작고하셨다. 배는 1973년 10월 25일 졸 그후 장손인 재영이 2004년 12월 공의 나라에 충심의 업적을 보훈처에 신청하여 2006년 2월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자로 신청되었다. 이와 같이 손조님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이야말로 대한민국 건립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생각할 때 늦게나마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과 위훈을 기리며 영예로운 포상을 받으시게 된 것은 자손 모두의 영광이라 생각하여 자손 후대에 전하고자 비를 세워 향을 올립니다. 2008년 10월 3일 장손자 유재영(兪載英) 외손자 윤성수(尹成秀) 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