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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증거자 세례요한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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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표어 §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느 2:17, 엡 5:26-27) † 행 동 지 침 † 1. 약속의 말씀 위에 갱신되는 서울교회 2. 믿음의 계대 이루어 미래를 열어가는 우리 교회 3. 성경 권위와 충분성을 믿고 개인, 가정, 사회의 변혁을 이루는 주님의 교회 제 1470 호 1991년 11월 24일 창간 2020년 4 월 19 일 § 교 회 목 표 § 1. 천국시민양성 2. 만민에게 전도 3. 빈약한 자 구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한복음 11장 40절) 발행처 :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교회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51 길 7 전화:(02)558-1106 팩스 : (02) 558-2107 http: www.iseoulchurch.or.kr 요한복음 강해 이종윤 원로목사 1. 예수님의 세례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 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요 3:22) 요 1:15-36절에는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 의 처음 증언이 나오는데 본문에는 요한의 또 다 른 증언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증언을 통하여 우리는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 은 기독교인의 3대 덕목을 첫째도 겸손이요 둘 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22절 말씀을 보면 마치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 푸신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요 4:1-2절을 보 면 예수님이 아니라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세례가 어디로부터 온 것이냐고 묻습니다. 결론 부터 말씀드리면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 지만 오늘 우리가 받는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으 시고 나를 위하여 피 흘리신 그 예수님과 연합하 기 위하여 받는 세례입니다(롬 6:3-5).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의 세례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 니다. 구약의 모든 것은 그림자요 세례 요한은 구약 의 마지막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 가에 죽으심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세례의 의 미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는 우리의 죄가 씻겨지지 않을 터이니 십자가 죽음 과 세례의 관계가 오늘 우리가 받은 세례이지 요 한의 세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교파에서는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실 때 에 침례를 받으셨으니 우리도 물속에 들어가야 된다고 강조합니다만 내 죄가 물속에 들어가서 씻겨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 가에 흘리신 피로 씻김 받았다고 하는 증표를 받 는 것이 세례의 의미이므로 우리는 구태여 요단 강 물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은 하나의 의식으로서 우리의 죄씻음 받은 표입니다. 그렇다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히 9:10을 보면 씻기우는 증표가 세례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억만 가지 죄는 율법 을 행함으로 씻겨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 도의 흘리신 피로만 용서받고 씻겨지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받는 세례는 요한의 세례가 아닙니다.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 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요 3:25)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변론을 시작 했는데 그 내용은 정결예식에 대한 변론입니다. 여기 ‘정결예식’은 헬라어로는 ‘카사리스모스’라 는 말로 ‘밥티스마’(세례)라는 말이 그렇게 표현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 ‘정결예식’과 ‘세례’는 어원학적으로는 같은 것으 로 ‘더러운 것에서 씻기움을 받는 것, 죄로부터 씻기움을 받는 것, 성결케 하는 것.’ 이런 뜻입니 다. 그러니까 요한의 제자들과 그리고 거기에 있 는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해서 논쟁 이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이 요한에게 와서 “랍비여 선생님 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 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 로 가더이다”(요 3:26)라고 했습니다. 요한 선생 님이 증거하던 그 사람이 세례를 주니까 지금 사 람들의 인기가 다 그쪽으로 넘어가더라는 말입 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을 보면 여기에 ‘이데’ 라는 글자가 있는데 이것은 ‘보시옵소서’라는 감 탄사로서 노골적인 감정의 표현입니다. ‘보시오, 지금 당신이 증거하시던 그분이 세례를 주니까 당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모조리 그분에게로 몰 려가고 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이간질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자기의 선생님으로 하여금 질 투 감정을 일으키게 해서 예수님에게 대적하도 록 충동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생기는 것은 비교 감정 으로부터 생깁니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 습니다. 성취감도 없어집니다. 누가 행복자입니 까? 타인과 비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사람, 그가 행복자입니다. 남보다 뒤졌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흐르면 뭐가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천지개벽이 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요셉이 천지개벽이 되기 전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종으로 팔 려가 수없이 많은 오해를 받고 감옥까지 갔지만 결국엔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니 하나님이 드시 면 막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높이시면 아무리 흔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됩니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지 마십시오. 세례 요한이 예수님 을 향하여 비교하고 대결하기 시작했다면 아마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례 요한을 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다음 주 계속) 겸손한 증거자 세례 요한 I (요 3: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