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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말기에 판군매국하는 무리들이 왜적의 휼계에 속아 500년 종사가 무너지고 36년간 수정속에서 우리민족은 노예로 전락하여 가진 고초와 박탈을 당하게 되었다. 이시기에 생장하여 세속에 합류하지 않고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오로지 청소년들에게 옛배움과 민족정신을 교육해서 조국광복에 힘이되고 전통문화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한 인사들이 있었으니 이곳 예산 청양 지역에 석운 최공도 그 중의 한분이다 공은 고종309년 임진에 덕산면 시량리에서 출생하니 삭녕최씨의 시조는 고려어모랑장 휘 선보이고 4전 휘 항은 세종명신으로 시호가 문정이며 영의정부원군이니 공의 16대조가 된다. 4전 휘 언수는 문과한림으로 윤원형에게 미움을 받아 남원으로 낙향하였다. 고는 휘 한구이고 비는 청주이씨 신평이씨이다. 5.16다음해 임인2월 23일 71세로 공주 탄천면 가척리에서 최후를 마치고 묘소는 그 마을 산45번지이다. 돌아가신후 58년만에 공에게 수학한 소사영 이흥범 김봉제 노인 셋이 성우를 공주중호까지 멀리 찾아와서 송덕비문을 부탁하여 그동안 몇차례 군청에 진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