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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항식은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기덕 출신이다. 1906년 4월 25일 민종식(閔宗植) 의병의 참모사(參謀士)로 참전하여 홍주성(洪州城)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4일만에 일군의 역습을 받아 안항식 등 83명이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 중 이식(李侙)·안항식 등 9명이 대마도로 호송 감금되니,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9의사(九義士)라 칭하였다. "한 가락 뱃노래에 해문(海門)에 당도하니 대마도라 만여 가의 마을이 있네 온 산의 솔과 대는 누구 위해 푸르렀나 우리도 저와같이 절의를 지켜보세." 대마도에 이르렀을 때 읊은 안항식의 시다. 감금 4년만에 귀국했으나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고 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였다. 검은 옷을 거부하고 한복을 입은 것이라든지 매일 북쪽을 향해 4배(拜)한 일이 모두 위정척사 정신의 발로였다. "타향의 나그네라 입맛도 쓰거니와 긴긴 밤 나라 걱정 단 잠을 못 이루네." 귀국하여 보니 나라는 이미 망하여 없어지니, 10년 칩거 끝에 1922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자료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