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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구는 풍천인이니 고종 정해에 왕진에서 출생하여 경술국치후에 군수사 조병채와 더부러 군자모금에 헌신하였으며 군정부연락과 자금조달을 전담 하였던바 만주를 4일에 행진하고 초소를 무난통과하여 시인에 이위축지최면술이라 하더라. 오호라 시불리방 여신책도 무용이요 왜정의 폭정에 의거 4년만인 1915년에 체포되어 징역 5년형을 각골하였으니 대한민국정부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여 길이 신책과 충혼을 기리다. 오준상은 동복인이니 고종 무인생이며 왕진리에 거주하다. 일찌기 사제에서 훈련중 전참판 민종식의 삼고로 역사적항일운동에 몸담아 선구적 활동으로 인하여 망명중인 상해 김구선생으로부터 격려문을 입수하고 의병 50명일대를 편성하여 몸소 의병장이 되여 적시적소에서 일병을 기습하고 노획한 무기로 무장을 포강하여 1906년에 탑산전투에 대거출전하여 사기왕성에 많은 전과를 올린바있으나 세불리로 체포되니 적은 경성으로 압송하여 사형판결한지라 고종은 이를 신속배려하여 특명석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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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중은 파평인이니 고종 무인에 적곡관현에서 출생하였다. 공이 29세 병오에 을미조약체결에 불승비분하여 의병장 민종식막하에 십장으로 종군하니 국내는 물론 만주, 장춘, 봉천과 로국해참위까지 유격하여 왜적 섬멸하는 전공을 올렸고 그후에 한성에서 미국관광단을 영접하려는 일총독을 폭살하려다가 계획이 발각되어 즉시 체포되어 모진 고문끝에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6개월간 미결수로 불굴투쟁타가 겨우 석방되니 장구한 의병생활에 신후무육하여 외손 이계업이가 생전에 숙수지공을 성실히 하였으며 사후에 송종화례하거 함포왈유시공유시외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