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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상봉하솔 범절이 훌륭하셨으며 법도있는 가풍진작과 자녀육영에 주력하시어 가문의 내훈의 본이 되시다가 66년에 타계하시니 향년 67세이시고 걸위부우 합폄하시다. 공은 영년 3세부터 수학 진천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학하여 1년만으로 졸업 당년 17년에 청주농업학교에 입학한 수재이시다. 재학중 3.1독립운동에 투신 동년 3월 7일 청주장날 만세운동에 용약 그로인하여 6월형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하셨으며 즉시 출학당하셨다가 광복후 명예졸업장을 받으셨다. 공은 학생의 몸으로 분연히 항일운동에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선봉에 섰던 청농학생 항일구국투사 11명중 한분이시고 이는 1982년에 청농 교정에 건립된 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이 고증하는 바이다. 출옥후도 가진 고초를 무릅쓰고 향이레 강당을 설치 구국일념 민족정신교육에 정려하셨으며 해방후 공직 13년에 걸처 국리민복을 위한 애국충일한 지방행정에 여생을 바치셨다. 공은 효제충신이라는 신념 드높은 생애를 누리셨교 스스로 생의 의의를 바르게 체득하시고 이상과 목표를 세워 그를 위하여 평생 일관정진하심으로서 한 인생을 값있고 보람되게 영위하시다 이에 조상의 충효유풍과 선고의 청정고매한 인품 특히 애국애족의 근본으로 한 신념과 정열의 고귀한 생을 누리신 거룩한 행적이 자손들은 영원히 추모하오며 후손에게 물리기 위하여 건비수묘하옵고 모든 자손들은 존영앞에 업드려 명복을 기리기리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