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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226 에 그 집단은 다시 같은 장소에 쇄도하고 피고 재익은 다른 사람에 솔선하여 헌병에게 “사 람을 살해하고 그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느냐?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군중을 집으 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완강하게 항쟁하고, 피고 (조)기시도 다른 사람에 솔선하여 큰 돌을 같은 장소 유치장에 던져 파괴해서 구금 중인 김용이를 탈취하고, 피고 덕용·금봉 도 역시 타 사람이 솔선하여 같은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짐으로 각 그 집단의 기세를 도와 이에 군중이 기세를 타 돌을 던지고 또 곤봉 등을 흔들어 같은 장소 또는 헌병에게 폭행하 기에 이르렀다. 위 사실은 옥천헌병분대에서 한 피고 공재익에 대한 신문조서에 자신은 대정 8년 3월 27 일 오후 1시 무렵 면사무소에 갔다가 그로부터 이원시장에 이르러 헌병주재소로 향하는 도 중 죽은 자의 형으로부터 동생이 헌병에게 사살 당하였다는 말을 듣고 분개한 나머지 헌병소 로 갔는데 같은 곳의 직원 앞에는 많은 군중이 둘러싸고 육창주 등이 왜 사람을 사살했냐고 질타하고 있어서 자신도 앞에 나와 분대장에게 “왜 사람을 쳐서 죽이느냐, 헌병이 되어서 사 람을 죽이고 그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느냐? 이에 대한 조치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했는데 이(李) 감독보조원은 자신에게 “너는 구장이 아니니 그 장소에서 강하게 질문을 할 때가 아 니다. 그런 모양으로 일을 말하니 다른 자들이 오히려 힘을 얻어 폭행을 하려 하지 않느냐, 빨리 다른 폭행(가담)자를 데리고 집에 가라”고 말했는데 자신은 “이 죽은 자에 대한 조치를 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답하고 그 곳에 있었는데 오후 5시 반 무렵에 군중은 헌병을 향하여 나뭇조각 또는 돌을 던졌고, 또한 군중이 일시에 기세를 모 아 만세를 부르고 목석(木石)을 던졌는데 그때 자신은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른 것뿐이고 폭행 을 한 적은 없다는 내용의 진술 기재, 같은 피고 조기시에 대한 제2회 같은 조서에 자신은 3월 27일 오후 무렵 이원시장에 도착 하였는데 군중이 조선 독립 만세를 불러서 그 집단에 가담하여 만세를 부르고 시장을 행진하 던 중 그 사이에 헌병이 군중 속에서 육창주·허상기를 헌병주재소에 연행해 가고, 자신 등 은 그 뒤를 따라 같은 주재소에 가서 김용이가 난폭한 행위를 하여 유치장에 들어가고 다른 자는 헌병에게 그 부당함을 따지며 전면에 있었고 군중은 사무실을 향해 돌을 던져 헌병이 발포하여 이일만의 동생이 사살되었기 때문에 군중은 일시적으로 그 장소에서 도망쳤지만 이일만은 동생의 사체를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사격한 자는 나오라고 위협했는데 그 때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