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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UX DE MÉMOIRE DU BATAILLON FRANÇAIS 프 랑 스 대 대 전 적 지 프 랑 스 대 대 전 적 지 지평리 - SITE DE CHIPYONG-NI 1951년 2월 13일, 사령부는 혹한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대와 지원 인력들을 전선에 투입시킨다. 모든 공동화기가 전방에 배치되었고 박격포는 보병들 로부터 수십미터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프랑스대대는 가장 넓고 평평한 남서쪽에 위치한 구역을 담당하는데, 이 구역은 서울까지 이어지는 철로의 노반이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Le 13 février 1951 au soir, le commandement met en ligne, malgré le froid, toutes les unités et le personnel des services. Toutes les armes collectives sont installées en première ligne et les mortiers sont seulement en retrait de quelques dizaines de mètres des voltigeurs. Le Bataillon tient le secteur nord-ouest, le plus étendu et le plus plat, coupé en son centre par le terre-plein de la voie de chemin de fer qui mène à Séoul. Chipyong-Ni, février 1951. Parachutage des munitions à Chipyong-Ni. 지평리, 1951년 2월 Collection V.Eynard © ANAAFF ONU 지평리에서의 탄약 투하 34 지평리 지평리, 1951년 2월 시콜스키 R5 헬기로 이송되는 부상자 1951년 2월 13일 밤, 중공군의 공격은 기습적으로 시작되어 새벽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중공군의 파상공격은 유엔군의 화력앞에 무너지고 만다. 1951년 2월 14일, 미 2사단의 정보 부대는 23연대가 후위부대로 부터 완전히 고립되었고 중공군 4개 사단에 의해 포위되었음을 알린다. 프랑스대대에게 가장 시급했던 것은 탄약 보급만이 아니라, 중상자의 헬기 이송이었다. 1951년 2월 14일 저녁, 유엔군의 끊임없는 조명탄 사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공군은 새로운 파상공격을 시작한다. 프랑스대대 왼쪽에 위치하고 있던 미 2대대의 한 중대는 완전히 붕괴되며 점령하고 있던 고지를 빼앗기고 중공군은 프랑스대대를 장악하게된다. 그러나 프랑스대대는 여러차례의 반격을 시도하며 지평리가 함락되는 것을 막는데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