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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UX DE MÉMOIRE DU BATAILLON FRANÇAIS 프 랑 스 대 대 전 적 지 프 랑 스 대 대 전 적 지 « 쌍터널 » - SITE DE « TWIN TUNNELS » 오전 11시,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르미르 소령은 ≪  끝까지 버티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프랑스대대는 오후 일찍 도착한 미공군의 화력지원과 탄약을 낙하산으로 투하받으며 진지를 고수한다. 저녁때가 되어 프랑스대대는 14시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빼앗겼던 진지를 힘겹게 되찾는다. 이 활약으로 프랑스대대는 첫번째 군 표창과 함께 첫번째 미국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A 11h00, les pertes s’accumulent mais l’ordre du chef de bataillon Le Mire est de « tenir coûte que coûte ». Le périmètre tient grâce aux parachutages de munitions et à l’appui de l’aviation américaine, qui intervient en début d’après-midi. Le Bataillon reprend alors mètre par mètre en fin de journée le terrain perdu, après 14 heures de combat intense. Ce nouveau fait d’armes vaut au Bataillon français sa première citation française à l’ordre de l’Armée et sa première citation présidentielle américaine. « Twin Tunnels », février 1951. Trois des soixante-dix premiers soldats sud-coréens affectés au Bataillon français sous les ordres du capitaine Goupil. ≪ 쌍터널 ≫, 1951년 2월 © Documentation France illustration 프랑스 대대에 배속되어 구필 중대장 지휘를 받는 첫 70명의 한국 병사 중 3명 30  쌍터널  ≪ 쌍터널 ≫, 2007년 9월 프랑스군 참전기념비 화강암으로 된 ≪ 쌍터널 ≫ 전적비는 2007년 9월 17일 원주로부터 동쪽으로 약 15km떨어진 지점에 건립되었다. 이 전적비는 ≪ 쌍터널 ≫ 전투중 전사한 31명의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터널 두개를 잇는 철로 가까이 마련된 작은 공원안에 건립되었다. 한편, ≪ 쌍터널 ≫ 전적비에는 전투 지점 가까이에 위치한 터널을 표현하기 위해 알파벳 U자가 거꾸로 새겨져있다.  쌍터널  프랑스군 참전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