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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UX DE MÉMOIRE DU BATAILLON FRANÇAIS 프 랑 스 대 대 전 적 지 프 랑 스 대 대 전 적 지 한국전쟁 참전 유엔군 프랑스대대 1951년 6월부터 개성에서의 휴전회담이 시작됨에 따라 전투의 강도도 약해지 고, 유엔군은 휴전회담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공격에 투입되는 병력을 1개 대대 혹은 2개 대대로 축소한다. 체력을 회복한 중공군과 북한군은 25km에 걸쳐 은둔하기 시작한다. 진 지전이 시작된 것이다. 프랑스대대는 “볼 (미군은 펀치볼이라 부름)”이라 불리는 인제북쪽의 산악지대에 배치되고 그곳에서 중공군보다 훨씬 끈질긴 북한군에 맞서 싸우게 된다. 일명 ≪ 볼 ≫ 지구, 1951년 7월 15일, 최전방으로 차량 이동 중인 지원 중대 일행 ≪ 볼 ≫ 지구, 1951년 7월 굴곡진 산천 풍경 Cote 883, mi-mai 1951. 한국전쟁 참전 유엔군 프랑스대대 - LE BATAILLON FRANCAIS DE L’ONU DANS LA GUERRE DE COR EE 1951년 5월 16일부터 23일까지 프랑스대대는 미2사단이 부채뜰(p.53)방향으로 후퇴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고, 결국 중공군의 진격은 유엔군의 집중포화로 분쇄되고 만다. 1951년 5월 말, 프랑스대대는 유엔군의 재반격에 참여하고 인제지역에 있던 중공군으로부터 제3충격군을 고립시키는데 성공한다. Du 16 au 23 mai 1951, les volontaires français protègent, au prix de lourdes pertes, le repli de la 2e Division d’infan- terie américaine vers le sud dans la vallée de Putchaetul (p.53), avant que l’avancée chinoise ne soit écrasée sous les bombes et l’artillerie. Fin mai 1951, le Bataillon français participe à la contre-attaque de l’UNC, qui parvient presque à couper la 3 e Armée de Choc du reste des forces chinoises dans la région d’Inje. 1951년 5월 중순 883고지 © Collection Pelletier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