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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UX DE MÉMOIRE DU BATAILLON FRANÇAIS 프 랑 스 대 대 전 적 지 프 랑 스 대 대 전 적 지 14 한국전쟁 참전 유엔군 프랑스대대 - LE BATAILLON FRANCAIS DE L’ONU DANS LA GUERRE DE COR EE 1951년 2월 말, 중공군의 겨울 대공세가 분쇄되고 유엔군은 재반격을 준비한다. 1951년 3월 초, 프랑스대대는 1037고지(p.41)를 확보하기 위해 경사가 가파른 전투지에서 격렬한 전투를 치룬다. 1037고지는 춘천과 38선 으로 가기 위한 길목이자 달아나는 중공군을 추격하기 위한 길목이었다. Fin février 1951, la grande offensive chinoise d’hiver est brisée et l’UNC se prépare à contre-attaquer. Début mars 1951, le Bataillon français est engagé dans des combats violents, sur un terrain particu- lièrement escarpé, en vue de la prise de la cote 1037 (p. 41). Cette cote ouvre à l’UNC la route de Chuncheon et du 38 ème parallèle, à la poursuite des forces chinoises qui se dérobent. 한국전쟁 참전 유엔군 프랑스대대 1951년 4월 말, 중공군은 재정비를 하고 공격을 재개한다. 중공군은 수적인 우세함, 그리고 산악지대 침투를 통해 유엔군에게 큰 패배를 안겨주려 했다. 프랑스대대의 군의관 이었던 줄 장-루이 소령은 2명의 한국인 병사를 구하려다 지뢰를 밟아 1951년 5월 8일 산화한다. (p.49) Cote 1037, 6 mars 1951. A droite, l’adjudant Paul Callet sur la cote 1037 dans la matinée. 1951년 3월 6일 1037고지 Raymond Benard © ANAAFF ONU 사진 오른편, 아침 나절 1037고지에 선 폴 칼레 상사 1951년 5월초 883고지 한국에 도착한 제2보충대 소속 병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