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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연천군 항일운동 유적지 95 하신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연천군 백학면에 편입되었다. 연천지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21일 두일리 장날에 모인 주민들의 만세시위에서 비롯 되었다. 이날 시위의 주도 인물은 조우식(趙愚植), 정현수(鄭賢秀), 구금룡(具今龍) 등이었다. 이들은 장터에 모인 주민들과 함께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118) 특히 구금룡은 소방용 경종을 쳐서 100여 명의 주민을 모았다. 참가 인원이 늘어나 기세가 오른 시위대는 시장 인근의 백학면사무소로 몰려가 직원들에게 시위 참여를 요구하였으나, 호응하지 않자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항의하였다. 2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일본 헌병 의 제지를 뿌리치고 시위행진을 계속하면서 인근 지역으로 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이 사건 등으로 조우석은 징역 3년, 정현수는 징역 2년, 구금룡·이낙주(李洛周)·홍순겸 (洪淳謙)·한상혁(韓相赫)·김문유(金文裕)는 징역 1년 6월, 김복동(金復東)은 징역 1년, 백 천기는 징역 8월에 처해졌다. 총독부 지도 13. 백학면 두일리 조사 의견 두일리 장터의 만세시위는 연천지역 3·1운동의 발단이 되는 운동이므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애향심 및 애국심 고양을 위해 이러한 역사적 의의와 함께 시위 전개과정 등을 알려주는 표지석이나 안내판을 현 기념탑 인근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118) 「조우식 등 판결문」, í��독립운동사자료집�� 5(3·1운동 재판기록), 1972, 559 5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