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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연천 항일운동 일운동사í��(경기도사편찬위원회, 1995), ��연천군지��(연천군지편찬위원회, 2000), 「연천지역 의병에 관한 연구」(이병주, 1999) 등 기존 연구 성과에서 조사 후보지를 추려 내었다. 구체적 으로 보면 항일의병 전투지 54곳, 3·1운동 만세시위지 6곳, 사회운동 유적지 1곳, 독립운동 가 유적 3곳 등이다. 이어 해당 조사 후보지와 관련된 1차 문헌자료(조선총독부 및 산하기관 발간 보고서, 신문 기사 등)와 비교 분석하여 후보 조사지를 40여 곳으로 압축하였다. 특히 항일의병운동 사적지 는 ‘어느 읍(면)의 북방 몇 리 지점’처럼 막연한 기록이 적지 않아 조사 후보지에서 많이 제외 된 편이다. 물론 1차 문헌자료 조사 과정에서 기존 연구 성과에서 소개되지 않은 조사 후보지 10여 곳을 새로 추가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선정한 조사 후보지의 경우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한곳 한곳마다 현장 조사를 수행하였다. 유적지에 대한 사진촬영도 현장조사와 함께 진행하였다. 현장 조사를 진행하면서 청산면 백의리(白蟻里) 능안[陵內] 의병장 이홍응(李洪應) 체포지 의 사례처럼 마을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유적의 경우는 제외시켰다. 만세시위지인 적성 장파리(長坡里) 경우처럼 인근 시군에 편입된 사적지도 제외시켰다. 특히 연천군은 북한과 접경지역인 까닭에 왕징면 고왕리(高旺里) 깊은골[深谷洞] 의병전투지와 같은 군사분계선 내 에 위치한 유적지들이 적지 않아 많이 제외되었다. 이러한 현장 및 문헌조사 결과 이번 조사에서 총 23곳의 유적지가 조사되었다. 이 중 고랑 포(高浪浦) 의병전투지 등 12곳은 이번 조사에서 새로 위치를 확정할 수 있었다. 특히 연천향 교 근대학교터, 당포(堂浦) 의병전투지, 웹윗청년회 소재지, 의열단원 김공신(金公信) 집터 등은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 4곳의 유적지는 기존 연구 성과에서 언급마저 되지 않은 장소로, 1차 문헌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내 현지조사를 거쳐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