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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덕균이요, 자는 성국이니 광주인이시라. 중시조의 휘는 양중이요, 자는 사개요, 호는 석탄이니 사려계하야 관지통정대부 형조참의러니, 당아 조혁명하야 항절불신하고 둔거광주 남한산하 하야 불응징명하고 지피?적이불굴하다. 태종 즉위하여 이용잠 고구으로 특배한성윤하되 역불수하고 종수양지절하니 식공지 16세조시라. 조의 휘는 기달이시고 자는 군삼이니 관지가선대부행지 중추부사겸 공조참판이요, 조 비는 정부인 함평이씨요, 계조 비는 밀양박씨라 고의 휘는 도석이요, 자는 경서요, 비는 무안박씨니 생 3자하니 장왈 학균이요, 차왈 공이요, 계왈 병균이라. 공이 생어 고종 16년 기묘 10월 17일하시니 천품이 청명영민하야 소 호독서하고 전 람군서하야 성경현전을 무불통요하니 연지고관에 학덕이 출중하고 심성이 온후과대하야 대인접물에 불유구하니 일향지사 전 중이러시다. 공이 연지 31에 경술국치를 당하고 41세에 기미독립만세가 일어나니 공도 감연히 분기하여 동지자 300여명을 모집하야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수지면에서 용인구읍 근처로 이동중 왜병들의 발포로 희생자가 생기니 부득기 해산 귀가하였으나 익일 왜헌병들이 몰려와 공과 기외 10여명을 체포 문초하니 공이 주동자로 자인하여 서울로 송치 기소되여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일본에 인질로 가 있던 영친왕 이은 공이 결혼하여 처음 모국 방문시에 경사라 하여 감형에 은전을 받고 1년 5월만에 출감하시였으나 폭악한 놈들의 고문을 받은 여독으로 오랜 세월 건강의 악화로 신고하시다. 노경에는 향리자제들을 모아 훈학에 힘쓰시다. 일구월심 고대하든 조국광복을 보시고 10년을 더 사시다가 단기 4288년 3월 29일 천수를 다하시니 향년 77세하시다. 배위는 남평문씨니 천성이 인자하고 유숙덕하야 승순부자하고 규문내칙에 무부명정하니 종족향당이 칭선자자러라. 공께서 재소시엔 상시 옥바라지를 게을리 않으시니 그 형체인고를 필설로 다하리요. 공께서 출감 후 지성으로 섬기시다가 우연 득병하야 수년간 신고하시다가 4274년 신미 10월 17일 별세하시니 향년 59세 하시다. 공께서 별세하신 지 30여년인 4319년 병인 12월 16일자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으시니 원통할손 공께서 재세시에 이런 은전과 광영을 못보시고 별세하시니 자손된 자 그 지원극통함을 금할 수 없나이다. 인명왈 영령이시여. 감격하소서. 이 어찌 애국충정과 살신성인하는 숭고하신 지사 인인의 희생적 정신의 대가가 아니오리까. 천장지구 영원토록 거룩하신 애국정신과 민족에 받친 훈공은 청사에 기리 빛날 것 입니다. 영령이시여. 왕생극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