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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민족의 자긍심을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었다. 일제에 수탈당하고 질시 받으며 지내온 민족의 정기를 새삼 되살린 역사적 봉기였다. 용인에서 가장 궁벽한 고장 수지 고기리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월 29일 이덕균 지사의 지도로 봉기한 만세운동의 행렬은 동천과 풍덕천을 지나면서 1500여 명으로 그 수가 불어나 구성과 기흥으로 진출하려 하였으나 보정에서 일본 헌병대의 저지를 받았다. 그러나 행렬이 전진을 계속하자 일본 헌병대는 무차별 사격을 가해 안종각 최우돌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이덕균 지사는 체포되어 1년 6개월의 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이때 함께 만세운동을 벌였던 이도해 등 16명이 태장 90대를 맞고 훈방되었다. 이 지사가 투옥되던 때 장남은 나이 15세의 미성년이어서 농사가 힘들었지만 마을 주민들이 함께 울력하여 농사를 거들었으며 이 지사가 출옥하자 고기리 주민 모두가 추렴하여 이 지사의 자택 뒷동산에서 위로잔치를 벌였다. 이는 일제의 감시가 무서웠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사를 아끼는 주민들의 애국일념을 엿볼 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지사의 자는 성국(聖國)이요 본관은 광주이다. 1879년 10월 17일 고기리 370번지에서 이도석공과 무안 박 씨의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조부 기달 공의 훈도를 받았다. 지사는 천품이 뛰어나고 학문이 깊어 과거를 준비하던 중 국권이 상실되자 중도에 그만두었다. 이지사는 기미년 당시 마을 구장으로 있었는데 만세운동으로 인해 체포되어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였다. 출옥 후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젊은이들을 위해 한학을 가르치는 훈장으로 진력하는 한편 인근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미풍양속을 전수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으 칭송과 더불어 환영을 받았다. 지사는 부인 남평 문 씨와 혼인 3남 1녀를 두었으며 손자녀는 15명이다. 198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 받았다. 2019년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잊혀져 가던 3.1정신이 새롭게 인식되면서 광주이씨 문중에서 이덕균 이도해 지사의 의거를 크고 명예롭게 되새기는 한편 후대의 귀감으로 삼고자 종중의 이름으로 공적비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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