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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홍모처럼 가벼이 여기고 의를 태산같이 무겁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곧 의인이요 정신은 곧 정기다. 세상에 사람은 제제할지라도 사람마다 의인이 아니오. 시대는 면면히 흐르지만 언제나 의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의인은 국가불운의 제에 혜성처럼 출현하나니 그 광망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안태의 정도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의인이 나타난 곳에 반드시 나라는 부흥되고 겨례는 회생한다. 의인의 정기야 어찌 숭고하고 갸륵하지 않으랴. 전의후인 이한응 공은 고종 11년 갑술 서기 1984년 9월 21일에 태어난 의인이니 출생준층 첩출하는 한말의 내환과 외우로 풍운이 가장 암담하고 파란이 심히 음악한 속에 부대끼게 되었으며 또 갑오에는 엄친 남영우령관 경고공이 관군의 영장으로 동학란을 토벌하다가 전사하였으니 공은 이때 약관의 나이로되 그 흉중에는 강극한 비통과 함께 만곡의 감회가 서려 있었다. 공은 천성이 영오한 위에 이와같은 환경의 자극을 받아 범인과 다른 뜻을 품고 사숙에서 한학을 수습하다가 16세에 관립영어학교에 입학하여 영어를 연마하였고 21세에는 사마방에 응시하여 성균관지사에 합격하였으나 이해에 전기한 바 불의의 변상을 당하고 칩거 근신 중에 3년을 집상하였다. 24세에 한성부주사에 26세에는 모교인 영어학교 교관에 임명되어 맡은 바 직무에 진체면려하였다. 이에 그 인격과 재분이 인지되어 28세때 3월에는 주각여의양국 공사관 3등 참서관으로 발탁되었으니 이것이 곧 공으로 하여금 방명을 만대에 전하는 기연이 되었든 것이다. 처음에는 공사 민영돈과 함께 영경륜돈에 부임하여 그를 보좌하더니 2년 후 계유에는 통훈대부에서 정삼춤 통정대부로 승진되었고 갑진에는 민공사가 귀국하게되매 서리공사로서 영의양국과의 외교직무를 전담하였다. 일본이 청일전쟁에 승리한 여세로 호시탐탐 한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