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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선생은 철종12(1861)년 9월 26일 용인시 마평동 신평마을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한후 상경하여 고종32(1895)년 김홍집내각의 도지부 주사를 하였다. 그후 고종35(1898)년 남궁억등과 황성신문을 창간하여 주필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여고 만민공동회 간부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된바 있으며 고종40(1903)년 다시 도지부 주사를 하였다. 고종42(1905)년 11월 황성신문에 게재된 을사조약을 폭로하는 '시일야방성대곡'을 장지연이 끝맺지 못하자 후반부를 작성하였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황성신문은 무기정간당하였다. 고종43(1906)년 신정동국역사를 공동저술하였다. 순종1(1907)년 황성신문사장을 하고 휘문의숙 숙장을 한후 이듬해에 대한협회발기에 참여하고 순종2(1908)년 초등본국역사 초등소학 수신서를 저술하였다. 순종3(1909)년 최남선과 조선광문회를 조직하여 고문서를 발간하였고 1910년 일제때는 신천초등역사를 저술하였다. 1915년 중앙학교 초대교장을 하였고 1919년 조선물산장려계운동을 지도하다가 발각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8년 대종교 정교가 되었고 1920년 동아일보 제호를 싯고 편집고문을 하였는데 1921년 5월 20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장례는 국민장에 준하는 동아일보사장으로 영결식을 하고 용인의 선영에 안장하였으며 1962년 정부로 부터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다. 선생은 전주인 이창모의 따님을 맞이하여 독자 년수를 두었는데 독립운동을 한 공적으로 2010년에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으며 광주인 안종화의 따님을 맞이하여 두아들을 낳